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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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eing Silence -----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

<침묵을 보다>에서 저자 마크 C. 테일러는 '침묵'을 주제로 철학, 종교, 예술 전반을 넘나드는 성찰을 보여준다.

주로 미국 회화 작품들을 분석하고 이해를 돕고 있다.

미술 전공자이거나 미학, 예술 철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정말 흥미로운 신간 소식이다.

왜 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시각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할까?

침묵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침묵을 보다' p42)

지은이 - 마크 C. 테일러

 

('침묵을 보다' 표지)

저자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깊은 사고가 <침묵을 보다>를 깊이 있게 만들었다.

이력을 보면 종교철학자이면서 문화 비평자이고 포스트모던 신학자, 대학 출판부 편집자이기도 하다.

종교와 예술이라는 두 축이 저자의 가장 큰 관심인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차례 - 특이한 차례의 소제목들

책의 차례가 정말 시적이다. " 없이, 전에,부터, ..., 너머, 맞서, 내부에 등등"

저자의 침묵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창의적인 표현이 신선하다.

(아래 참조)

('침묵을 보다' 차례 일부)

예술을 통한 '침묵을 보다' - 내용 일부분만 ......

저자가 '침묵을 보는'방법으로 예술을 택한 이유는

"모호성과 어둠으로 점철된 침묵은 예술을 통해서만 또렷한 모습을 표현하거나 예술로 쪼갤 수 있다"

고 보기 때문이다.

(책 p43에서 )

<침묵을 표현하는 마크 C. 테일러의 글쓰기>

저자가 침묵을 표현하는 말들이 멋지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이고 모호하면서도 본질에 가깝게 표현하려는 저자가 보인다. 평소 철학과 예술, 회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마크는 풍부한 지식들(철학, 종교, 인문, 예술 등의 지식들)을 재료로 삼아서, 한 주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지식을 꺼내어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간다.

즉, 우리가 신변잡기로 대화를 이어가듯이 마크는 철학, 지식과 성찰로 <침묵을 보다>를 완성한다.

저자의 그런 노하우와 학식이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으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헤겔,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니체 ... 등 철학자들을 자유자재로 꺼내서 쓰고 있다.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들)

<침묵에 주목하게 된 계기>

어느 날 정리하게 된 부모님의 흑백 사진들을 보며, '침묵'을 떠올렸다고 한다.

책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진들이 '푼크툼'을 경험하게 했다.

<1. 없이>

진짜 흥미 있게 읽었던 장이다.

현대 사회는 소음의 시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술가로 루솔로를 소개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음악가이다.

루솔로라는 아방가르드 음악가가 음악으로 이용한 소리는 '금속 긁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천둥소리, 중얼거림....'이다. 이런 소리를 음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다양한 기계제품들과 문명의 이기들로 현대 사회는 엄청난 소음의 시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소리가 안 들리는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 다양한 '백색 소음'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빠른 음악에 식사 시간도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드디어 기업가들은 '침묵을 상품화하는 방법(책 p74)'을 찾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침묵은 소수의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책 p74) 되었다.

디지털화, 개인 요구에 맞춘 앱, 등 소셜 미디어는 오히려 인류를 유아론적 사고에 갇히게 만든다. 왜? 모두 자기 말만 하고 듣지를 않으니까. 수많은 목소리들은 있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는 이런 소리들은 소음이고 결국 '역설적으로 '침묵의 소리'가 되고 만다'(책 84) 왜 그것이 침묵의 소리일까?

극작가 해롤드 핀터가 말했다.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말하지 않는 전략 중 하나이기에 오히려 침묵이라고. 일상에서 이런 경우 가끔씩 있다. 뭔가 숨기려고 일부러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말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그 순간 진짜 해야 할 말은 '침묵'했던 것이다.

<'빛의 침묵을 듣는 방법' - 제임스 터렐> (책 p89)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빛이 침묵한다니! 빛이 침묵하다면 ... 어둠?

'제임스 터렐'은 빛을 탐구하면서 '완전한 침묵과 완벽한 어둠을 결합하는 방법'(책 p90)을 찾아 나갔다.

미국의 유명한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예술 작업들을 '빛의 침묵'으로 안내하는 과정들은 과학적이고 종교적이다.

<뉴먼, 라인하르트, 로스코>

미국 화가들이고 우리나라에는 색면 추상화가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세 사람 모두 '검정'이 가지는 정신적, 종교적 느낌을 표현했다. 책은 각 장을 따로 할애해서 세 사람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반복 강박>

"수전 손택은 현대 미술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반복이라고 주장했다. "(책 p199)

프로이트가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엄마의 부재를 물건을 숨기고 찾기를 반복하는 손주를 바라보며 "욕망의 좌절이 주체의 개인화라는 결과"(책 p207)를 가져온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욕망을 욕망하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 그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반복 강박'이라는 것이다.

떠올린 생각이라면, 미술가나 음악가 문학가들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침묵의 공간 ; 사막>

"하이드와 저드는 미국만의 고유한 예술을 창조하고 싶어 했고 그런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미국 서부의 사막"(책 p347)을 꼽았다.

이들 예술가가 사막을 예술의 공간으로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침묵을 보다' 내용 일부분)

<엘스워스 켈리>

로스코의 침묵과 켈리의 침묵을 비교하는 내용이 흥미 있었다.

로스코는 키에르케고르에서 의심과 공포 체념을 읽었다면 켈리는 삶을 긍정하는 희망을 읽었다.

색으로 침묵을 표현했는데 켈리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색면이 자유롭고 화려하다. ( 책에도 나오지만 앙리 마티스를 떠올리게 한다.)

침묵이 꼭 검은색일 필요는 없지 않나?

"흔한 것의 숭고, 평범함의 아름다움, 세속적인 것의 성스러움, 어둠 속의 빛, 이것이 켈리의 교회가 드러내는 바다." (책 p412)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철학자 니체가 그림을 산다면... 로스코 회화를 샀을까? 켈리 회화를 샀을까?

침묵은 신의 영역이라고들 한다. 예술가가 가진 창조성은 신적인 영역이라고들 한다.

그럼 예술가는 신이다. 세계는 예술 작품이고. "이 창의성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삶의 순간이다"

(책 p416)

디오니소스가 가진 '혼돈과 불안'의 에너지를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니체는 보고 있다.

-혼돈을 품고 춤을 추는 것 -

그 긍정의 침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아마 켈리의 회화를 사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 생각)

<돌담>

옛날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그 작은 마을 모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들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마크는 스스로 돌담을 만들고 사진도 실었다. 어릴 적 흔하게 보았던 돌담에 이런 예술적 가치가 있었나? 만약 그 마을이 아직도 있어서 저자가 둘러봤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왜 돌인가? 마이클 하이저의 대지 미술에도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나온다.

우리 지구 환경은 어디서 왔을까? 우주에서 온 암석들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암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생명 즉, 물고기도 나뭇잎도 고양이도 강아지도.....

"결국 모든 것이 돌덩이의 문제라면, 우리는 돌덩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책 p461)

고대 암석에는 고대의 깊은 침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침묵은 생명 탄생의 비밀 아닐까?

예술가가 이런 생각을 하려면 깊은 과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예술가들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어떻게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불행한 사람>

현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다고 한다. 자신으로부터 부재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자신으로부터 불행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흔히 말하는 '나답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동의한 나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언제나 다른 곳에 있는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이 세계 어디에서도 편안할 수 없다."(책 p224)

침묵이 현존하는 나를 일깨우는 시간이 되어 지금 여기 내가 행복할 수 있게 예술 작품들이 자꾸 시비를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묵을 보다' 표지)

예술가들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해 볼까?

침묵은 신적인 것이면서 일상의 것이고,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고, 이성의 한계 그 끝에 있는 것이다.

침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예술은 진정한 침묵의 상태를 체험하게 하고 침묵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수다나 노동이 침묵이 되기도 한다.

<침묵을 보다>를 읽으면서,

마크와 함께 예술을 통해 침묵을 보는 시간들을 보냈다.

역시! 예술가들이란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인류의 한 부분이라서 다행이다.

예술가들이 아니면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까?

해봤다고 해도 그냥 지나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예술가들이 시도한 다양한 표현방식을 살펴보는 일은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져 보는 일이다. 안 하던 생각을 해보는 경험도 중요하다. 평소 못했던 생각들을 따라가보는 낯설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체험을 <침묵을 보다>는 제공한다.

낯설고 용어가 생소하더라도 쉽게 그만두지 말고 그냥저냥 읽어 나가면 좋겠다.

예술과 회화를 통한 명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침묵을 보다' 표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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