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데이비드 N. 슈워츠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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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티 와인 (*이탈리아 와인 산지의 이름이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와인 )

-- 와인을 잘 모르지만, 앞으로는 꼭 기억하게 될 이탈리아 와인이다.

1942년 12월 2일 수요일,

축하만 할 수 없었던 그날, 인류 역사상 어두운 날일 될 수 있음을 경고했던 날

건배사도 없었고 극적인 연설도 없었던 그날 마신 키안티 와인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와인이 될 것이다.

와인을 다 마신 뒤 참석자 대부분은 병을 감싸는 밀짚 포장재에 서명했다.

(같은 책 p298)

이날은 시카고 대학교에서 페르미를 비롯한 유명 물리학자들이 원자로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제어된 핵분열 연쇄반응을 성공시킨 날이다.

이는 핵분열 무기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과는 천재적인 물리학자의 게으른 노력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페르미는 '중성자처럼 생각하는'방법을 배웠고 (같은 책 p303)

1930년쯤 로마대학교 때부터 1942년까지 수없는 실험을 거친 노력으로 완성된 일이다.

< 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정말 이 말처럼 페르미를 잘 드러낸 말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페르미를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페르미는 이론과 실험에 모두 뛰어날 뿐 아니라 당대의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 천체 물리학에서 지구 물리학까지, 입자 물리학에서 응집물리학까지 모든 분야에 통달했기 때문이다. "

(같은 책 p447)

이는 로스앨러모스에서 페르미의 젊은 동료였던 제프리 추의 말이다. 제프리 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박사과정을 하게 되는데 그때 페르미가 지도 교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우연히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의 유품, 서류함을 열어보다가 페르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과학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료들을 찾으면서 전기를 쓰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저자의 열정과 애정이 대단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페르미와 함께 일생을 살아온 느낌이다.

그와 함께(페르미와 함께)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양한 물리학자들을 만나고,

결혼도 하고,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고, 원자로 실험을 하고 논문을 내고.....

타임머신을 타고 1900년대를 살면서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살다가

다시 현대로 돌아온 기분이다.

(같은 책 목차)

목차에서 보듯이 책은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페르미 되기는 태어나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2부는 결혼과 이탈리아에서 물리학 연구 그리고 미국으로의 망명.

3부는 원자폭탄을 둘러싼 과정과 그 실험들.

4부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그 이후 페르미의 물리학 연구와 삶.

시간 순으로 배치하기 애매한 내용들 ㅡ 예를 들면, 자녀들과 부인의 삶, 느린 중성자 실험에 대한 특허 분쟁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4부에 실어 놓았다.

저자는 이 숨은 위대한 과학자를

엄청 찬양하거나 독보적인 인물로 만드는데 힘쓰고 있지 않다.

페르미 다운 생각이 어떤 것인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사실에 가깝게 서술하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페르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자료 이곳저곳을 참고하고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이 어떤 것인지 소개한다.

한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 전기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

좋은 글쓰기 선례가 될 것이다.)

페르미가 물리학과 수학에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당시 사회 변화였다.

산업 사회로의 변화가 기계와 전기에 관심을 가지게 했는데

당시 페르미의 아버지가 철도원에서 근무했다는 것이 기계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가정 환경이었던 것도 한몫한 듯하다.

페르미 아버지의 6살 어린 같은 직장 동료가,

페르미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물리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즉, 어린 시절 페르미의 호기심과 열정을 지지해 주고 도와주는 어른이 있고

같이 실험과 연구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형, 나중에는 친구가 있었다.

또한 열정도.

페르미가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 고학년,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에 로마의 중고 서점을 뒤져 옛 수도사의 물리학 책을 찾아 친구와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밑바탕에는 페르미 자신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주변의 도움도 빛을 발했던 것 아닐까

재능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인내를 요구한다.

(늘보 생각)

(같은 책 p 121)

ㅡ 아르곤 연구소 동료들이 페르미가 죽은 뒤에 만든 앨범 <페르미에게 사랑으로>의 표지로 사용된 사진 ㅡ

페르미와 그의 아내 라우라의 결혼사진이다.

페르미의 행복했던 한 날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참고로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가구를 마련해야 하나 보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던 페르미는 아내에게 가구 살 돈을 주고 구입을 아내에게 맡겼다. 페르미의 가구 구입 조건은 탁자와 의자의 다리가 곧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까지 어떻게 저자가 알아냈을까?

위대한 사람들이 위대한 업적을 성취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사소한 이야기도 흥미를 끄는 법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러한 소소한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다.

(Henry Farmer 핸리 파머)

< 아래 사진에서 틀린 곳을 찾아본다면? >

(같은 책 p379)

사진 아래 설명에도 잘 나와있듯이

장난을 좋아하는 페르미답다.

CBS 방송 기자 에드워드 머로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1942년 12월에 제어된 연쇄반응을 이뤄낸 순간을 과감하게 재현했다.(같은 책 p378) 이때 찍은 사진인가 보다.

이 책 표지 사진으로도 사용된 이 사진에서 페르미 머리 위에 있는 식이 사실은 잘못된 식이다.

페르미가 틀린 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지 일부러 틀리게 써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페르미의 일과 >

이 위대한 과학자의 하루 일과는 어땠을까?

위대한 발견과 호기심과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24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밥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런 과학자였을까?

오히려 정확히 하루 일과를 지키고, 주기적으로 친구들 동료들과의 파티와 게임을 즐기고,

야외활동에서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페르미에게 재미있었던 점은

꼭! 위대한 중요한 실험 앞에서도

점심을 꼭 챙겼다는 것이다.

( 두 실험 모두에서 '자 이제 점심 먹고 합시다'라고 페르미가 말했다.)

아침 5시 30분에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거의 대부분 벗어나지 않았다 한다.

책에서는 이후 잠들 때까지 하루 일과를 시간 별로 잘 정리해 놓고 있다.

< 스승으로서의 페르미 >

선생님으로서 페르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까칠하고, 권위적이고, 예민한 선생님이었을까? 우수한 학생들로만 팀을 이루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

오히려 그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절대로 짜증을 내지 않았다 한다.

"그 반대로 페르미는 설명을 다시 해야 하면 즐거움을 한 번 더 누리는 것 같았다"

밸런타인 텔레그디가 쓴 페르미의 시카고 시절에 대한 에세이에 따르면

페르미는 교과 과정 강의 준비에 강박적이었고, 큰 종이에 모든 강의 내용을 정리했다고 한다.

(같은 책 p 443~444)

정말 멋진 스승의 모습이 아닐까? 나도 아이가 잘 못 알아들으면 짜증부터 냈는데

페르미를 보면서 다시 한번 더 설명하는 즐거움을 가져보도록 해야겠다 다짐했다.

( 시카고 대학 시절 페르미의 제자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결과보다 더 페르미에게서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바로 위의 사실들이 아닐까 한다.)

< 페르미 노벨상 >

(같은 책 p214)

위 사진은 페르미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핑계로 이탈리아 정부의 감시를 벗어나 미국으로 망명을 성공하게 된다.

정말 타이밍이 좋았다.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보면서 정말 영화에나 나오는 일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페르미 일가족에게도 일어났구나 싶었다.

이렇게 망명에 성공하지만, 전쟁 중이라 이적국 시민이라는 이유로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페르미 가족의 적응은 잘 이루어져서 부인도 사망할 때까지 미국에 살게 된다.

< 페르미와 물리학 >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핸드폰과 컴퓨터 등 수많은 전자 기기들이 양자 역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기술들이다.

양자 컴퓨터가 결국 발명되었다는 소리를 작년 어느 날에 들었던 것 같다. (늘보 생각)

현대 과학 기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물리학의 역사 또한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어려운 물리에 대한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과정이 정말 잘 소개되어 있다.

물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정리는 얼마나 잘 되어있나 알기 어려웠지만,

대강의 흐름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페르미가 매료되었던 수학은 확률과 통계였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수학적 방법이 확률과 통계라고 알고 있다.

전자의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고 그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된 수학이다.

확률과 통계뿐 아니라 미적분 방정식, 항렬, 지수 로그 등등 고등학교 때

이유도 모르고 풀었던 문제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양자 역학의 이상한 현상들을 연구하는 흐름이 대강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고

이들 다음 세대에 양자 역학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알 수 있다.

물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좋아할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핵분열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 수 있었고

핵폭탄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에 원자폭탄이 어떤 정치적, 과학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는 대목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이 책은 페르미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읽고 나면 현대 즉 1900년대 이후 물리학의 발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 페르미와 동료들 >

페르미를 중심으로,

양자 역학 연구에서 익히 들었던 이름들, 닐스 보어, 슈뢰딩거, 리처드 파인먼, 하이젠베르크, 호펜하이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등등 당시 쟁쟁한 이름들이 많이 나와서 더 흥미진진하다.

물리학의 발전이 한 개인의 독보적인 아이디어와 연구였다기 보다는

그 당시의 뛰어난 연구가들이 정보를 상호 공유하고

국가를 넘어서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발전된 하나의 과정이었다.

즉, 서로가 최신 아이디어, 연구를 공유하고 있고 (학술 모임 등을 통해서) 그 공유된 연구에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더하면 또 다른 연구가가 더하고 그래서 조금씩 발전해온 과정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페르미는 우리말로 "인덕"이 있다.

그것이 페르미의 친교 능력 덕분인지, 아니면 당시 사회관계의 특성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료들과의 협력이 그 연구에 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페르미와 그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도 주의해서 읽어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다.

특히 자주 동료들과 파티를 열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술을 엄청 마셨을 것 같은데 당시 페르미와 동료들은 게임을 했다.

어떤 게임을 했을까?

읽어보면, 당시 페르미와 동료들 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페르미가 그다지 매력 없는 인물로 읽히더라도

물리학, 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 원자 폭탄 실험 과정,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삶들이 이 책을 정말 풍부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정말 왠지 모르게 마음 한가득 꽉 찬 느낌을 받을 것이다.

페르미는 생각보다 일찍 세상과 작별했다.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의 몸이 아프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고.

더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자세 때문이다.

페르미의 사인은 무엇일까?

페르미가 위암으로 투병했지만, 다른 원인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나중에 그의 아들 줄리오(나중에 저드로 개명한다. )도 같은 원인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 유명 과학자의 아내 >

과학자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책 p 478)

페르미의 부인 라우라는 이미 페르미가 죽기 얼마 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한다.

"원자 가족"으로,

이를 계기로 말년에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뒷부분에는 페르미의 아들, 딸, 손자, 손녀에 대한 근황까지 잘 소개하고 있다.

(뒤표지)

페르미에 대한 뒤표지 소개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과장되게 페르미를 찬양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페르미가 누구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득하고

페르미의 삶을 통해서

1900년대 물리학을 다양한 연구자들이 어떻게 활동했고 무엇을 연구했는지 포괄적으로 담으려고 했고

당시 시대 상황과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물리학이 어떻게 사회에 이용되었는지

정말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1900년대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과학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물리를 전공하거나

여타 과학을 전공하는 자들, 또는 다양한 일반인들이 읽는다면,

과학자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어떤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페르미의 삶을 다루는 이 책 < 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심심풀이 퀴즈 >

2차 세계대전 중 군사 보안을 위해 주요 과학자들은 자기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다.

이때 페르미의 암호명은? (* 이 글 중간에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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