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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최유안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평점 :
서로 다른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적 시선은 비슷한 경로를 통하여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대학교수, 문화예술 행정기관 센터장인 행정가, 비엔날레 예술 감독 전시기획자라는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의 여성들이다. 외부적인 시선이야 성공한 여성상으로 비치지만 내부적으로 그녀들이 마주한 현실과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앞방 교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간극이 낳은 상황을 피하고 싶어 무어라도 말할 거리를 찾았지만, 어떤 말도 침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기에, 그저 가만히 올라간 입꼬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음성으로 들리는 말보다 소리 없는 대답이 때로는 더 무섭거나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이 두 단어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일반인으로 조직에 잘 붙어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하며 시간 때우는 것이 기꺼이 즐겁기에 승진이 반갑지 않고 현상 유지의 감사함을 느끼며 산다는 평온한 자의 소심한 허세를 내비치지만,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일로 다가왔다.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괜찮다는 걸 초회는 알았다. 삶은 화려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은 그저 자기 앞에 주어진 생을 꾸려 나갈 뿐이었다. 그거면 될 때 일었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지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행복이 지나치게 작고 세심한 순간에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반복적으로 알게 되는 순간일 뿐이라며 이어간 침묵은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기를 포기하는 것 같았다.
“행복은 물질에 대한 배타적 의식도 아니고, 지식이나 정신에 대한 맹목적 추구도 아니다.”
작가는 ‘고위직, 권력을 지닌 여성’이라는 설정으로 탄탄한 출발선에서 세상의 시선을 끌어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애물과 마주하게 되고, 한발 다가가면 오히려 가중되는 혼란만이 이상한 질서와 부딪히게 한다. 뒤로 물러나 다시 원위치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어떤 역할이라기보다 보기 좋은 허울일 뿐이라는 생각이 잠시 자리하기도 했다. 사회의 말, 세상의 시선은 어쩔 수 없이 ‘나’라는 대상을 통할 수밖에 없기에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보를 따라 차분하게 읽기 좋은 소설로 다가왔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행복이 보인다는 말은 욕망을 내려놓고 주위를 보라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바람 빠진 치열함 속에서의 욕망은 심심한 행복을 건지는 격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차열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언젠가 다시 재생되어 또 다른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