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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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도시는 온통 잿빛이다. 유일하게 색깔다운 색을 가진 것이라고는 빅 브라더의 얼굴이 그려진 커다란 포스터뿐이다. 당의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을 바라보며, 어느 날 윈스턴은 큰 결심을 한다. 일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는 함부로 미간을 찌푸리는 일조차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은 텔레스크린이라는 송수신장치를 통해 감시당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잠꼬대 한번 잘못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버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일기를 쓴다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불온한 짓거리였다. 윈스턴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자기고백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간다. 텔레스크린에서는 쉴 새 없이 생산계획의 초과달성과 전선에서의 승전보를 전했다. 그러고는 다음번부터 초콜릿 배급량이 일인당 30그램에서 20그램으로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윈스턴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결과가 나오고 난 이후에야 계획을 만드는 일. 생산량이 아무리 적어도 계획량이 그보다 적기만 하면 틀림없이 초과달성이었다. 당 지도부에서 초콜릿 배급량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더라도 나중에 와서 배급량을 줄일지도 모른다는 말로 과거의 신문기사를 모조리 바꿔버리면 상관없었다. 윈스턴은 이런 식으로 신문기사들을 조작하며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가 원한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오세아니아가 이스트아시아와 전쟁을 벌였고, 당 고위부에서 초콜릿 배급량을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으며, 지금은 증발해버린 사람들이 예전에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과거가 조작되는 순간 원래의 과거를 잊고 조작된 과거를 믿었다. 현재의 상황아 바뀌면 과거 또한 당이 요구하는 대로 바뀐다는 것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어제 함께 일했던 동료가 다음날 종적을 감추곤 했다. 윈스턴은 혹여 자신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한다. 열성적인 당원일수록 위험했다. 그중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젊은 여자 당원 줄리아였다. 당에 순결을 맹세하는 진홍색 띠를 허리에 두른 그녀는 윈스턴을 은밀히 관찰했다. 윈스턴은 오늘밤에라도 당장 어딘가로 끌려 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마침내 어느 날, 윈스턴은 복도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다. 그녀는 윈스턴에게 은밀히 종이쪽지를 건넨다. 떨리는 마음으로 윈스턴은 쪽지를 열어보았다. 종이에는 서툰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텔레스크린과 당원들의 감시망을 빠져나와 밀회를 즐긴다. 둘은 당에서 금지하는 감정인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당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고위당원인 오브라이언은 겉으로는 헌신적인 당원이었지만 어딘지 모를 이단의 냄새를 풍겼다. 윈스턴은 그가 자신을 절망에서 이끌어주리라 희망했다. 오브라이언이 신어사전을 빌려준다는 핑계로 윈스턴을 집에 초대하고, 윈스턴은 그의 초대를 반란군에 가담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줄리아와 함께 오브라이언으르 찾아간다. 오브라이언은 과연 짐작대로 반란조직의 일원이었다. 그는 윈스턴과 줄리아에게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하도록 하고 조직의 우두머리가 쓴 책을 내준다.

둘만의 은신처에서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윈스턴은 그 책을 읽는다.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다만 그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던 바로 그런 내용들이 잘 정돈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줄리아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그녀와 함께 잠들었다. 밤늦게 일어난 그들은 자신들이 포위되었음을 깨닫는다. 사상경찰들이 깔려 있었다. 그들은 힘없이 구속당하고, 거대한 애정부의 지하 취조실로 끌려들어간다. 줄리아가 곤봉에 얻어맞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윈스턴은 그녀를 오랫동안 다시 보지 못한다.

윈스턴은 고문을 당하고 온갖 죄를 자백하지만, 도무지 취조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처형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강제수용소에 보내지지도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오브라이언이 나타난다. 그는 윈스턴을 완전히 재교육시키는 게 자신의 임무이며, 윈스턴은 영혼 속까지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고 난 뒤에야 처형될 것이라고 말한다. 당에 대한 불온한 마음을 없애지 않고 처형하게 되면, 더 이상 그 불온함을 응징하거나 붙잡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금껏 애정부에 들어온 죄인들은 전부 결국엔 철저히 당을 따르고 빅 브라더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오브라이언은 말했다. 윈스턴은 굴복당할 뻔하지만, 아직 그가 배반하지 않은 것이 하나 남아 있었기에 끝까지 버텨낸다. 그는 결코 줄리아를 배반하지 않았고 여전히 사랑했다. 오브라이언도 그 점을 인정한다.

마지막 방편으로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101호실로 끌고 갔다. 그 어떤 완벽한 논리로도, 또는 그 어떤 강렬한 호소력으로도 윈스턴을 무릎 꿇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이용해 윈스턴을 굴복시킨다. 태어나면서부터 윈스턴은 쥐를 병적으로 무서워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결박해놓고 그의 코앞에 굶주리고 포악한 쥐를 풀어놓았던 것이다. 윈스턴은 절규했다: 제발, 나 말고 줄리아에게 풀어놓으시오!

이제 윈스턴은 석방되어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그는 하루종일 단골 술집에 틀어박혀서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아프리카 전선에서의 승전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승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텔레스크린을 뚫고 나왔고, 그는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으로 아찔함을 느끼면서 조용히 처형이 집행될 날만을 기다린다.

 

감상

나는 디스토피아 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조지 오웰의 1984, 앤서니 버제스의 시계태엽오렌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필립 딕의 화성의 타임슬립,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제임스 발라드의 크래시따위를 읽느라 꼴딱 샌 밤이 부지기수였다. 막장드라마를 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듯, 가난한 여인이 신데렐라가 되는 모습에 쾌감을 느끼듯, 나는 세계가 파괴되고 인간이 파멸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생을 견뎌왔던 것이다.

1984에 나오는 독특한 단어 체계인 <신어>를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네이버에 <조이캠프>라는 신어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엉뚱하게도 필리핀에 있는 어린이 영어캠프의 후기가 여럿 검색되었다. 모처럼의 휴가를 오붓하게 즐기기 위해서 부모들은 리조트 내에서 열리는 영어캠프에 아이를 참가시켰다. 아이는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즐겁게 물놀이를 즐겼다. 신어로 조이캠프joycamp는 강제수용소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존재를 계몽시키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들은 올해 초과 달성한 재정수입, 즉 연봉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나에게 알려주었고 어서 빨리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훈계했다. 세월호 사건에 눈물 흘리지 않고 메르스 사태에 분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소시오패스 보듯 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날, 해외여행을 하던 친구 한 명이 사고로 죽었고, 나는 그 친구를 위해 내 눈물을 다 쏟아버렸다. 메르스 공포가 절정일 무렵에는 먹고 살기 위해 철야근무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그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나에겐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없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그러하듯 내가 속한 현실에서도 빅 브라더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반란자 골드스타인 역시 불멸할 것이다. <헬조선>을 탈출하더라도, 이스트아이아와 유라시아가 그러하듯 어딜 가나 나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증오주간에 참여하고 텔레스크린 앞에서 방긋 웃어 보이는 일이 꼬우면 북에 가라는 말은 그러므로 성립할 수 없다. 북이든 남이든,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찬가지임을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분증오든 빅 브라더든 다 좋으니 하기 싫다는 사람은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들은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용납하지 않으려 들었다. 시달리다 못한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들의 구호를 가만히 중얼거려 보았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그리고 잠깐 고민한 끝에 패배를 겸허히 인정하고 무지렁이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무식하고 가난하면 텔레스크린도 설치해주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텔레스크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무지렁이의 삶을 택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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