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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1. 줄거리
다이스케는 예민한 사람이다. 심장이 조금만 벌렁거려도 꼼짝 못하고, 꽃향기가 독하다며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다. 그는 자신의 집에 얹혀 사는 서생 가도노를 보며, 저런 무위도식하는 자와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깊은 안목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모로 봐서 교양 있는 신사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는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전적으로 아버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안온한 삶을 영위한다. 사업가인 아버지와 형은 다이스케를 못마땅히 여긴다. 아버지는 지방의 탄탄한 유지인 사가와의 딸에게 다이스케를 장가들게 하려 하지만 다이스케는 결혼 제도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던 중 학창 시절의 절친이었던 히라오카가 다이스케를 찾아온다. 은행에서 해고를 당한 히라오카는 도쿄로 상경해 재취업을 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는 유산을 하고 심장병이 악화되는 등 건강이 좋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상의 문제에 더해, 결정적으로 그들 부부의 관계가 시들해졌음을 다이스케는 알아차린다. 미치요와 히라오카의 결혼을 주선했던 입장에서 다이스케는 그들 부부의 화목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안타까워한다.
옛 친구를, 그리고 옛 연인을 마주하면서 다이스케는 <그 전>의 기억을 되살린다. 원래 미치요와 깊은 사이였던 것은 다이스케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친구를 위해 그녀를 양보했고, 양보로도 모자라 손수 발벗고 그들의 결혼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다이스케는 불행한 미치요의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낀다. 연민은 과거의 기억과 결합하며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가와의 딸과의 혼인 절차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한 단계씩 진행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정략결혼 상대자 사이에서 고민한다. 미치요를 택하면 지금까지의 안락한 생활은 끝날 것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완전히 평판을 잃고 내일의 세끼 식사를 위한 돈벌이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었다. 사가와의 딸을 택하면 앞으로도 지금처럼의 안락한 생활이 보장될 것이었다. 안정된 생활도 견고한 가정의 토대 위에서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심장 고동 소리에 귀 기울이고 꽃핀 정원을 감상할 것이었다.
결국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택한다.
2. 감상
소세키의 소설은 『마음』 이후로 두 번째인데, 『마음』을 읽을 때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비로소 소세키에게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D.H. 로렌스의 흙탕물 튀기는 듯한 질펀함도 없고 모파상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소세키의 이 소설은 왠지 로렌스와 모파상을 떠올리게 했다.
다이스케는 과연 어떤 인간이었는가.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다이스케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해둘 필요성을 느꼈다. 작가가 다이스케의 생활을 비꼬고 있는 것인지 옹호하고 있는 것인지 그도저도 아니고 그저 무미건조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인지 혼동됐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의하면 소세키는 `게으를 권리`를 옹호했다고 나와 있는데, 내가 보기엔 석연치 않았다. 다이스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작가가 그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질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대로라면 소설의 결말은 다이스케가 이제껏 그래왔듯 사가와의 딸과의 혼인을 흔근슬쩍 얼버무리는 동시에 미치요와의 관계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치미 떼는 장면으로 끝났어야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전> 답지 않게 누군가를 선택했다. 요컨대 행동에 나선 것이다.
찜찜한 의혹을 풀기 위해 내가 주목한 것은 시점이었다. 어째서 소세키는 다이스케를 3인칭으로 그려냈을까? 소설은 거의 대부분 다이스케가 보고 경험한 것들을 서술하고 있었다. 즉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해도 충분한 것을 굳이 3인칭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그`의 차이. 결국 소세키는 독자와 다이스케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길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게으를 권리의 옹호자`로서의 다이스케가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메인 주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미치요를 히라오카에게 보내고 나서 그가 얻은 미래는 파멸이 아니었다. 과거 다이스케는 `남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양보했던 바 있었다. 그 후 다이스케가 마주한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선택해야 하는, 응암 루프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기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는 않은 듯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다만, 다신의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이렇게 읽어냈다.
인간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가만히 시간을 보낼 때 만족감을 느끼고, 누구는 단 일 초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혼자 있음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는가 하면, 화장실조차도 친구의 손을 붙들고 들어가지 않으면 소변도 못 누는 누군가도 있다. <나에게 맞는 인생은 무엇일까.> 그것을 발견해내고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나의 `그 전`과 `그 후`를 가르는 경계가 될 것이다. 독자로서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화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