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니, 바다에 나갈 때면 나는 돛대 바로 앞에 서 있거나 앞갑판으로 곧장 내려가거나 로열마스트(가장 위에 있는 돛대) 꼭대기로 올라가야 하는 일개 선원으로 간다. 사실 나는 명령에 따라, 오뉴월 들판의 메뚜기처럼 이 활대에서 저 활대로 펄쩍펄쩍 뛰어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꽤 힘든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오래전에 뭍에서 기반을 잡은 유서 깊은 집안, 예컨대 벤 렌슬러나 랜돌프나 하르디카누트 같은 집안 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타르 단지에 손을 집어넣어야 하는 일반 선원이 되기 직전까지 시골에서 학교 선생으로 위세를 부리며 가장 덩치 큰 학생들까지도 벌벌 떨게 했다면, 어떤 경우보다도 가장 힘들 것이다. 미리 경고해두거니와, 교사에서 선원으로 전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씩 웃으면서 견딜 수 있으려면 세네카와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달인 진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괴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사라진다.
어느 심술 사나운 늙은 선장이 나에게 비를 들고 갑판을 청소하라고 명령한다 해서,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신약성서>라는 저울에 달아보았을 때, 그게 얼마나 큰 모욕이 된다는 것인가? 내가 그 늙은 선장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른다고 해서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를 조금이라도 멸시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혹사하고 부려먹어도, 아무리 쥐어박고 후려갈겨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 다시 말해서 육체적인 관점에서든 정신적인 관점에서든 -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때리고 맞는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어깨뼈를 문질러주면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언제나 선원으로서 바다에 나간다. 선원은 반드시 수고한 데 따라서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객으로 배를 탄 사람이 한 푼이라도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승객은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 돈을 내는 것과 받는 것은 천지 차이다. 돈을 내는 행위는 과수원의 두 도둑이 우리에게 물려준 괴로움 중에서도 아마 가장 불쾌한 괴로움일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받는 것` - 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돈이야말로 지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가 진지하게 믿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멋진 활동으로 돈을 받는 것은 참으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우리 자신을 파멸에 내맡기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말하거니와, 나는 언제나 일개 선원으로서 바다에 나간다. 앞갑판에는 건강에 좋은 운동과 맑은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와 마찬가지로 - 피타고라스의 격언을 어기지 않는다면 -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은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훨씬 우세하고, 따라서 뒷갑판에 있는 선장은 대부분 앞갑판의 일반 선원들ㄹ이 마시고 뱉은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게 된다. 선장은 자기가 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사에서도 지도자가 모르는 사이에 일반대중이 지도자를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선 선원으로서 여러 번 바다 냄새를 맡아본 내가 이제 와서 고래잡이배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의문에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운명의 여신들이 보낸 경찰관, 끊임없이 나를 감시하고 나를 미행하고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경찰관이다. 내가 이 고래잡이 항해에 나선 거ㅅ은 신의 섭리에 따라 오래전에 작성된 웅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것은 좀 더 긴 연극 사이에 끼여 있는 일종의 짧은 막간극이자 일인극이었다. 그 연극 프로그램에서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전
이슈메일 아무개의 고래잡이 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다른 사람들은 고상한 비극에서 당당한 역할으르 맡거나 우아한 희극에서 짧고 쉬운 역할을 맡거나 익살극에서 유쾌한 광대 역할을 맡는데, `운명`이라는 무대감독이 왜 나한테는 고래잡이 항해의 이 초라한 역할을 맡겼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이제 와서 모든 상황을 돌이켜보면 교활하게도 다양하게 변장하고 내 앞에 나타나 그 역할을 맡게 한 여러 가지 동기와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그것들은 나를 속여서, 내가 확고부동한 자유의지와 뛰어난 판단력으로 그 역할을 선택했다는 망상에 빠뜨렸다. - pp. 34~36

노인의 광기는 어디로 보나 혼 곶의 파도와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선장은 어두운 소굴에서 축복받은 햇빛과 공기 속으로 나왔다. 그는 창백하긴 했지만 단호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고, 그래서 항해사들은 마침내 무서운 광기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여 신에게 감사까지 드렸다. 그러나 에이해브의 은밀한 자아는 여전히 미쳐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광기란 참으로 교활하고 음흉할 때가 많다. 겉보기에는 광기가 사라진 것 같지만 사실은 훨씬 포착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형되어버린 것에 불과할 때도 있는 것이다. 에이해브의 광기는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깊어졌다. 그것은 저 고상한 북쪽의 강인 허드슨 강이 산악지방의 골짜기를 지날 때 폭은 좁지만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깊게 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경우, 좁게 흐르는 편집증의 물줄기 속에 그의 넓은 광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지성은 전에는 살아있는 주체였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격렬한 비유가 허락된다면, 에이해브의 특별한 광기는 전반적으로 온전한 그의 정신을 공격하여 사로잡고, 중심에 모인 모든 대포를 자신의 무분별한 표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에이해브는 힘을 잃기는커녕, 그가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합리적인 목표에 쏟아 부었던 것보다 수천 배가 더 많은 잠재력을 그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되었다. - pp. 243~244

에이해브는 다른 문제도 잊지 않았다. 강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면 인간은 모든 천박한 생각을 경멸하지만, 그런 순간은 금세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신이 만든 제품인 인간의 본질적 상태는 바로 천박함이고,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설령 흰 고래가 이 야만적인 선원들의 마음을 충분히 자극하여 그들의 야만선 주위에 너그러운 의협심까지 만들어낸다 해도, 그래서 그 때문에 모비 딕을 추적한다 해도, 그들은 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기욕을 채워줄 음식도 먹어야 한다. 숭고한 기사도 정신에 불탔던 옛날의 십자군도 성지를 되찾으러 가는 도중에 절도나 소매치기를 저지르고 그 밖에 종교를 빙자한 부수입을 얻지 않고는 2천 마일이 넘는 산천을 가로지르려 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궁극적이고 낭만적인 하나의 목적에만 엄격하게 묶여 있었다면, 그 궁극적이고 낭만적인 목적에 진저리가 나서 등을 돌린 자가 많았을 것이다. 이 뱃놈들한테서 돈벌이의 희망을 빼앗지는 않겠다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그렇다. 돈이다. 그들은 지금은 돈을 경멸할지 모르지만, 몇 달이 지나도 돈을 벌 가망이 없으면 잠잠하던 돈이 당장 그들 속에서 반란을 일으켜 에이해브를 해치워 버릴 것이다. - pp.274~275

그런데도 태양은 버지니아의 대습지도, 로마의 저주받은 황야도, 광막한 사하라 사막도, 달빛 아래에 있는 수백만 마일의 사막과 비애도 감추지 않는다. 따라서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가진 인간은 진실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거나 아직 인간이 다 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진실한 사람은 `슬픔의 인간`이고,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진실한 책은 솔로몬의 책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전도서>는 정교하게 단련된 비애의 강철이다. `모든 것이 헛되다.` 이 완고한 세계는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이전인 솔로몬의 지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과 감옥을 살짝 피하고, 묘지는 재빠른 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지옥보다는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쿠퍼나 영이나 파스칼이나 루소를 모두 불쌍한 병자라고 부르고, 라블레는 지극히 현명하기 때문에 명랑하다고 단언하면서 태평한 인생을 보낸다. 그 사람은 묘석 위에 앉아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솔로몬과 함께 축축한 초록빛 이끼를 뜯을 자격도 없다.
하지만 솔로몬도 말하고 있다. "깨달음의 길을 떠나 헤매는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자들 속에 있으리."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때 내가 그랬듯 불빛에 자신을 내맡겨 불이 당신을 거꾸로 돌려놓거나 무감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비애인 지혜도 있지만, 광기인 비애도 있다. 어떤 영혼 속에는 캐츠킬의 독수리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이 독수리는 캄캄한 골짜기로 급강하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라 햇빛 찬란한 창공으로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독수리가 영원히 깊은 골짜기 안에서만 날아다니더라도, 그 골짜기는 산속에 있다. 그래서 독수리가 아무리 낮게 급강하해도, 산속의 독수리는 평야에 사는 다른 새들이 높이 솟아오를 때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 pp. 512~513

이봐, 금화.여기 있는 너의 12궁도는 인간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놓은 거야. 이제 곧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어봐야지! 덤벼라, 달력! 우선 백양궁의 수양 - 음란한 개, 이놈이 우리를 낳아. 그 다음은 금우궁의 황소 - 이놈이 맨 먼저 우리를 들이박지. 그다음은 쌍자궁의 쌍둥이 - 즉 선과 악이야. 우리는 선에 도달하려고 애쓰지만, 거해궁의 게가 와서 우리를 도로 끌어가지. 그러면 으르렁거리는 사자궁의 사자가 선에서 나와 길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우리를 사납게 물어뜯고 앞발로 오만하게 때리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달아나면서 처녀궁의 처녀를 큰 소리로 부르지. 그건 우리의 첫사랑이야. 우리가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별안간 천칭궁의 저울이 나타나 행복을 저울에 달아보고는 무게가 모자란 것을 알게 되지. 우리가 그것을 몹시 슬퍼하고 있을 때 천갈궁의 전갈이 나타나 궁둥이를 찔러서 우리는 펄쩍 뛰어오르지.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때 사방에서 쌩쌩 화살이 날아와. 사수궁의 궁수가 우리를 쏘면서 즐기고 있는거야. 그 화살을 뽑고 있을 때, 길을 비켜라! 하고 마갈궁의 염소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우리는 곤두박질하지. 그러면 보병궁의 물병이 홍수를 쏟아 부어서 우리를 익사시키지. 결국 우리는 물에 빠져 쌍어궁의 물고기와 함께 잠드는 거야. 이것이 높은 하늘에 쓰여 있는 설교인데. 태양은 해마다 그곳을 통과하고도 항상 생기 있고 기운차게 빠져나오곤 하지. 태양이 저 높은 곳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면서도 저렇게 유쾌하게 돌아다닌다면, 여기 밑에 있는 유쾌한 스터브도 꼭 마찬가지라고. 오오, 유쾌해야지. 영원히 말이야. 잘 있거라, 금화여! 하지만 잠깐. 저기 왕대공 녀석이 오는군. 기름솥 뒤에 숨어서 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 그래, 앞에 와 섰구나. 이제 곧 뭐라고 지껄일 거야. 그래, 그래, 시작했어." - pp. 520~521

나뭇잎 레이스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태양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신록을 짜는 베틀의 북처럼 보였다. 오오, 분주한 직공이여! 눈에 보이지 않는 직공이여! 잠깐 멈추어라! 한 마디만 물어보자! 그 피륙은 어디로 흐르는가? 어느 궁전을 장식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가? 말하라, 직공이여! 손을 잠깐 멈추어라! 너에게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아니, 북이 다시 움직인다. 베틀에서 무늬가 흘러나오고, 홍수가 콸콸 흐르는 융단은 영원히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베 짜는 신이 베를 짠다. 베 짜는 소리 때문에 그는 귀머거리가 되어 인간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베틀을 바라보는 우리도 역시 그 윙윙거리는 소리 때문에 귀머거리가 된다. 그곳을 빠져나와야만 비로소 그곳에 울려 퍼지는 수천 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의 공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방추가 시끄럽게 돌아가는 곳에서는 아무 말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열린 창문에서 튀어나오는 말소리는 아무 장애도 없이 또렷이 들린다. 그것으로 온갖 악행들이 발각되었다. 오오, 인간들아! 그러니 조심하라. 거대한 세상의 베틀이 내는 이 소음 속에서도 가장 은밀한 네 생각을 멀리서도 엿들을지 모르니까. - p. 540

그들은 서른 명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 그들을 모두 태우고 있는 한 척의 배는 온갖 잡다한 것 -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쇠, 역청, 삼베 - 이 모인 것이고, 그것들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서 하나의 구체적인 배가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중앙에 긴 용골이 배치되어 균형과 방향성을 부여해야만 물 위에 뜰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원들의 다양한 개성 - 이 사람의 용기, 저 사람의 두려움, 죄와 결백 - 이 하나로 융합되어 그들의 주재자이며 용골인 에이해브가 가리키는 대로 그 숙명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삭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돛대 꼭대기에는 키 큰 야자수의 우듬지처럼 팔과 다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어떤 자는 한 손으로 활대를 잡고 매달린 채, 다른 손을 앞으로 뻗어 초조하게 흔들고 있었다. 어떤 자는 눈 위에 그늘을 만들어 강렬한 햇볕을 가린 채 흔들리는 활대 위에 앉아 있었다. 모든 활대는 각자의 운명을 기다리는 인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아! 그들은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르는 고래를 찾아 끝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어디까지 헤치고 가려는 것일까! - pp. 660~6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