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신은 우리의 존경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신의 개념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신을 의인화하려고만 한다.신에게는 성별이 없다. 우리가 의인화했을 뿐이다.신에게는 종교가 없다.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신에게는 인종이 없다.
직접적 확신은 참된 것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접적 확신의 진리는 보편자이지만, 직접적 확신은 (개별자로서의) ‘이것‘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지각(知覺, Wahrnehmung)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것을 보편자로서 받아들인다. 무릇 보편성이 지각의 원리이듯이, 지각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구별되는 지각의 계기들인 자아와 대상도 각각 보편적인 자아이고 보편적인 대상이다.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원리가 발생했다.
『대논리학』 어딘가에서 헤겔은 ‘시작하려면 이미 많은 것이 시작되어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합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같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첫걸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실행되는 일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 자기가 세상에 태어났다는것조차 잘 모르는 갓난아기들뿐이지 싶네요. 사탕이나 장난감을 사려고 엄마나 아빠의 지갑에 처음으로 손을 대는 꼬마도 그 모험을감행하기 전에 숱한 고민과 계획과 음모와 반성과....… 그야말로 백팔번뇌로 얼룩진 준비 단계를 거치기 마련입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몸소 경험하여 잘 압니다.
테르모필레(Thermopylae)에서의 용맹함과 충성심을 간직한 채 군인으로서의 복종 의무를수행하며 산화한 결사대의 영웅담을 묘사한 이 문구와 훗날 그들을 위해 헌정된 노래들은 볼가(Volga)에서 수난을 겪었던 군의 기념비에는 새겨지지 못했다. 굶주림과 동상으로 인해 사라져간독일군의 흔적을 기리기 위한 무덤 위의 십자가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조차 세워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겪었던 고난과 그들이 보여주었던 미증유의 용맹함과 충성심과 그들에게 주어졌던 임무에대한 헌신은 승리를 갈망하던 목소리가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고 우리를 떠난 그들에게 느꼈던 환영(Disillusion)과 비통함이 우리의 가슴 속에서 점점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안에서 과거를 껴안으면 우리는 깨달음으로 이를 수있습니다. 그 깨달음 안에서 과거의 경험은 어떠한 집착이나 판단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그저 떠올랐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판단하고 거기에 집착하면 우리의 기억은 우리 존재를 둘러싸는배경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로움도 삶의 생생함도 많이느끼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