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화패권주의를 버린다면, 문화국수주의를 택해야 한단 말인가?절대로 그렇지 않다. 문화국수주의와 문화패권주의는 서로 정반대의 사상이지만, 두 사상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같이 문화선택의 기준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가 문화패권주의이다. 그것은 맹목적으로 어떤 외래문화척도를 선택하여 우리의 궁극적 길잡이로 삼자는 것이다. 문화국수주의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동일한 과오를 범한다. 그것은 광신적으로 우리자신의 문화척도를 우리의 궁극적인길잡이로 삼자는 것이다. 문화국수주의자는 어떠한 외래의 문화도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가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화패권주의에 못지 않게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일 뿐더러 또한 광신적이다. 그래서 문화국수주의와문화패권주의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신화는 세상의 기원과 인간 자신의 기원을 설명해줄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득한 옛날에, 문자나 기록조차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과거에 벌어졌을 일에 대해 인간 자신은 상상력을 통해 그 기원과 창조를 구성했을 테지만, 그것은 한낱 허구가 아니라, 그들에게만큼은 "살아 있는 진실" *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합병은 원래부터 통감부의 최종 목표였다. 그러나 통감부 관리들은 합병하기 전에 의병의 반란을 진압할 계획이었다. 의병을 일소하는 가혹한 군사 행동이 1909년 9월, 한국 남부에서 착수되었다. 압도적 성공을 거둔 인정사정없는 ‘교반적(神的) 방법에 이어,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양상의 군사 행동이 연이어벌어졌다. 많은 한국인이 오늘날까지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강한 증오심은 어쩌면 이 시기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안으로는 억조(兆)를 보안하고 밖으로는 만국과 대치하려하고 있는 이때 번을 폐하여 현으로 삼는다. 공연한 허실을 배제하고 간결함을 위주로 하며, 유명무실한 폐()를 제거하여 온 나라에 기강을 세우고 정령(政令)을 하나로 통일해 온 천하에 그 나아갈 길을 알린다.
일반적으로 유학은 도덕의 학술로서 중국에서 공자 이래 면면히이어져 왔다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육조·당의 지식인들이 오히려 불교나 도교에 매료되었고, 수많은황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대唐代의 과거시험 또한 유학 경전보다는 시 비중이 높았으며, 경전에의대한 지식도 사대부가 지녀야 하는 교양 정도의 영역에서 벗어나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