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이성
요컨대 군사 이론가들이 인정하는 두 가지 상반된 ‘무기의 원리‘가 모두파산하고 만 것이다. 궁수들이 시도한 발사체missile 원리가 기병대를 저지하거나 몰아내는 데 실패했고, ‘충격‘의 원리를 구현했던 기병대 역시 보병부대를 분쇄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이 도주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기병대가 가하고자 하는 ‘충격‘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정신적인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절충해버린 것은 틀림없이 말뚝의 존재였다. 짧은 거리를 대규모로 빠르게 쇄도해온 프랑스군은 자신들의돌격을 벌써 무너뜨렸어야만 할 죽음과 낙마를 이제 모면한 상태였다. 고슴도치형 방어 말뚝이 대형에 제공한 물리적 안전성에 대담해진 영국군은 격돌 직전에야 후퇴했다. 결국 말뚝 위로 치달은 말들이 장애물 앞에서 멈춰서기에는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 순식간에 격렬하고 소란스런 충돌이 일어났다.
재현 속에서 동일자가 타자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타자를 정의한다는 사실이 초월론적 통각의 통일이라는 칸트의 발상을 정당화해준다. 이 통각의 통일은 자신의 종합적 작업 가운데 공허한 형식으로 머물러 있다. 무조건적 조건으로서의 재현에서 출발하는 사유란우리에게서 얼마나 먼 것인가! 재현은 완전히 다른 ‘지향성‘에 매여 있다. 우리는 이 분석 전체를 통해 그것에 접근해 보려 한다. 재현이 행하는 구성의 경이로운 작업은 무엇보다 반성 속에서 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뿌리 뽑힌‘ 재현을 분석해 온 이유다. 재현이 ‘완전히 다른지향성에 매여 있는 방식은 대상이 주체에 매여 있는 방식이나 주체가 역사에 매여 있는 방식과는 다르다.
물론 그것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구성주의자들은 미학적 · 기술적·사회정치적 능력을 내부에서 통일시키라는 요구와 함께 산업계에서 조립 기술자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생시몽의 유토피아를 극단화시켜 전체 생산 과정의 선두에 서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에 의하면 예술가들은 초월적기술자인(Meta-ingenieur)이자 보편적인 발명가로 상승하기 위해 기술자가 지니고 있는 기술에 대한 ‘보조 지식을 획득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은 예숟가의 활동을 통해 이전에 다 빈치가 대변하던 기술적인 창조성과 미학에서의 창조성의 통일이 현대의 산업적 수준에서 다시 만들어질 수있다고 했다.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의 어수선한 분위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도가니 같은 상황은 미셸을 참담한 기분으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나바르 공이 파리에 들어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와 트리니 백작 일행이 오를레앙 근처의숲속에서 습격당한 사건은 벌써 파리 시민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어서,은밀히 왕을 찾아온 밀사라는 성격은 이미 박탈당한 뒤였다. 이것이 그의 사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