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는 현대소설의 아버지다. 이공아버지는 고마운 존재면서도 흠이 많은 아버지다. 이광수는 전 · 근대에 머물러있던 서사문학의 내적 문법을 바꾸고 현대성을 수혈하면서 비로소 한국어가 자아와 세계를 동시에 포획하는 현대소설에 적합한 문자라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근대문학의 맹아들은 이광수에게 와서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그것은 그대로 한국현대 서사의 장이 되었다. 이 장강에 기대 한국의 서사문학은 꽃을 피웠다. 이광수는 한국 현대 서사문학이 발아하는 기점이자 여명의 외침이고 아울러 무시무시한 빅뱅이다. 이광수라는 빅뱅을 겪지 않았다면 한국 서사문학의 밤하늘을찬연하게 수놓는 성좌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잘 빚은 항아리" 그 자체보다 그것의 용도를 더 궁구한 사람이다. 어떤 근대인보다 문학의 가능성을 일찍이 엿보았지만, 문학에 흘려보낸 수액은 턱없이 부족하고, 문학의 목덜미를 집요하게 물고 놓지 않는 야수의 열정이 부재했다. 그래서 그가 일군 심미적 이성의 골밀도는 성기고 문학의 골격은 취약했다. 그렇기에 그의문학은 권력의 욕망이 이글대며 타오르는 현실이라는 지옥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쉽게 녹아버린다. 이광수 문학을 다만 "그만의 문학‘으로 남게하는 것은 이광수의 불행이면서 동시에 현대 한국 서사문학의 근원적 불행이다.
이광수李光洙(1892~1950)는 현대 한국문학의 선구자로서 그만큼 많은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일제의 ‘일본식 성명강요‘ 정책에 따라 자진하여 카야마 미쓰바꾼 식민지 조선의이름을조숙한 천재이자 걸출한 작가인 이광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자 원죄의 배태자다. 이광수는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 (김현)다. 그렇지만 한국 문학사는 이광수를 빠뜨리고는 기술할 수 없다. 그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발자취는 크고도 뚜렷하다. 최남선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데 반해, 이광수는 저 변방의 몰락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며 세파를 헤쳐나간다. 고아라는 취약하고 어려운 배경 속에서도춘원은 명민한 머리와 피니는 노력으로 한국문학의 선구자,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선다. 그러나 우리 현대문학사가 낳은 이 걸출한 인물은 동시에 변절자 또는 민족반역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비행기 격납고 속처럼 폐쇄적이던 왕조시대의 막바지에 목숨을 받아, 개화파의 계몽주의와 척사파의 민족주의가 한꺼번에 분출되며 혼란의 극치를 이루던 시기에 활동한 식민지 작가의 한계이다. 요즘 들어 친일문학론이 새롭게 논의되며 한국문학의 자랑이자 수치인 이광수의 일제강점기 행보가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선각자 이광수를현대문학의 흠 많은 아버지로 갖게 된 것은 우리 현대문학사에 내장된 불행이다.
학원에서 철학과 윤리학, 경성학교와 경신학교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이광수는 1922년 5월, 갑자기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우리나라가 쇠퇴한 까닭은 타락한 민족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속성으로 허위와 비사회적 이기심, 무신 겁나 나타, 사회성 결여 등꼽는다. 그러고는 이러한 민족성을 고쳐야만 우리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친다. 민족성에 대한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특히 19세기 들어 제국주의 열강이 자기만족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약소민족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침략세력의 억지 논리와 강면에 맞장구를 친 셈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우리 민족의 바탕이 ‘선‘ 하므로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우리도 우수한 민족의 대열에 낄 수 있다고 한 가닥 희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족성 개조의 방법론 면에서 설득력이 없고, 피침략자인우리는 결국 열등한 민족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단정을 지었기 때문에 이광수의「민족개조론」은 한마디로 패배적 민족주의론이다.
내가 ‘조선신궁‘에 가서 절하고 카야마 미쓰로로 이름을 고친 날, 나는 법써 훼절한 사람이었다. 전쟁 중에 내가 천황을 부르고 내선일체를 부른 것은 일시 조선 민족에 내릴 듯한 화단을 조금이라도 돌리고자 한 것이지마는, 그러한 목적으로 살아 있어 움직인 것이지마는, 이제 민족이 일본의기반을 벗은 이상 나는 더 말할 필요도 안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의 고백』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매우 모호한 논리로 자기변명을 하고 있는데, 그가 뼈저리게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했던 것 같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