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일찍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과거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는 제1원인을 알고 싶은 욕구,
즉 어떤 사건이 그런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알고 싶은 욕구에서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듯하다.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않은 채 찜찜한 부분을 남겨둔당시의 설명에 대한 불만에서, 또한 완전히 해명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의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거부까지 하면서 모든 문제의 뿌리까지파헤치려는 성향에서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이런 지경으로 살아가는가? 우리는 어떤 존재여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톨스토이의 전반기 일기와 편지에서생생하게 드러나듯이, 이런 ‘지긋지긋한 의문‘ (pro-kiyatye voprosy)에 경험론적 해답을 찾으려는 욕구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톨스토이의 머릿속에서 하나로 녹아들었다. 

톨스토이의 눈에는, "실제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일"을 두고 서로 비난하면서 끝없이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최악의 존재였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없지는않았다. "역사의 과정에 명확히 쓰인 지식의 나무에 열린 열매를 맛보지 말라는 명령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무의식적 행위만 열매를 맺고,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사건에 담긴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더라도 그는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인간과 사건의 상호작용을 기록하는 데 목표를 둔다면서, 이처럼 무한히 복잡한 현상을 일정한 과학적 법칙에 끼어 맞추려는 사람들도 어떤 의도를 지닌사기꾼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맹인들에게 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선 맹인 지도자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가혹한비판은 이론가의 우두머리, 즉 나폴레옹까지 겨냥한다.
나폴레옹은 사람들을 최면에 걸어, 역사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올바로 대답할 수 있는 남다른 지능과 뛰어난 직관으로 사건들을 이해하고 조절했다고 믿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대단한 주장일수록 큰 거짓말이다. 나폴레옹은 이 엄청난 비극에 관련된 모든 인물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동시에 가장 경멸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톨스토이의 목표는 진실의 발견이었다. 따라서 역사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찾아내서, 역사를 재창조할 수 있어야 했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사회학도 과한이라 자처하지만 거짓말이다. 역사를 설명해줄 진정한 법칙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흔히 사용되던 ‘원인‘ ‘사건‘ ‘시대정신‘ 등과 같은 개념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런 개념은 무지를 감추려는 얄곽한 속임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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