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쳐보니 본문은 한 줄도 읽을 수 없었으나 안에 있는 여러 가지그림이 일본이나 중국 책과는 매우 다른 맛이 있었으며 정교한 그림을보고 있노라니 눈앞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간 책을 빌려 주야를 가리지 않고 그림을 베껴 요시오가 체류하는 동안 작업을 마칠 수있었으나, 때로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에도는 난학이 탄생한 요람이 되었다. ‘해부고 부르던 것을 새롭게 ‘해체‘라고 번역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없이 ‘난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기 시작하여 마침내 일본 전체에서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지금 유행하고 있는 난학의시작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정도 전에 외과법이 외국에서 전해졌으나 의서를 직접 번역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더군다우리가 의도의 근본을 이루는 신체 내부 모습을 처음으로 번역한 것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으니 하늘의 뜻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오색실이 어우러진 모습은 아름답지만 나는 빨간색이나 노란색처럼한가지 색을 고르고 다른 색은 모두 버린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때 생각한 것은 백제의 왕인 133 오진천황134 때 처음으로 한자서적을 가지고 온 이래 대대로 천황은 학생들을 중국에 보내 중국 책을 배우게 했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중국에 뒤지지 않을만큼 한학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열대의 일본》은 머리로만 쓴 글이 아니다. 일본, 네덜란드, 그리고 두나라가 접속했던 열대 동남아시아를 그야말로 몸으로 직접 다니면서 조사하고 탐구하며 쓴 글이다. 데지마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레이덴과 암스테르담을 포함하여 유럽 곳곳의 자연사박물관과 식물원을 탐방하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다. 졸서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는 이런 지적 작업의 첫 결과물이다. 이 책은 루브르미술관과 에펠탑의 파리가 아니라 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의 파리를 부각시키면서 근대 일본의 태동이 유럽 박물학의 영향을 받은 데지마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독자들이 이 책을 먼저 읽게 되면 《열대의 일본>이 더욱 명료하게 다가올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는 동남아시아에서 무역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에 상관의 설치 장소도 이런 맥락에서 선했다. 다시 말해 막부는 일찌감치 ‘대항해시대‘를 열어갔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가 동남아시아 무역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예의주시하면서 주인 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도모할 수 있었다. 주인선 무역을 통한 일본의 수출품과 수입품은 교역의 대상 지역 또는 시기에 따라 다소 달랐지만 대체로 주요 수출품은은 동, 철, 유황, 도자기였다. 수입품은 중국에서 생사, 사탕, 도자기, 학종 서화, 서적을, 동남아시아에서는 향신료, 사탕, 약종, 황견소목을 각각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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