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자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과정은 그 시작에서는 너무나도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예술이 좋은 것이라면 모든 사람에게도좋은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림과 조각이 달리 표현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 지각, 흥미를 의식하게 하는 것이라면, 왜 모든 종류의 인쇄가 동일한 임무, 즉 사람들이 시민적이고 종교적인 공공건물에서 습관적으로 본 집단적 예술의 기능을 어느 정도 보충하는임무를 수행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 공적 예술의 높고 고상한 수준에 이르는 소수의 예술 형식이 아니라고 해도, 왜 실내화를 신고서난롯가에 앉아 쉬는 곳에 알맞은 덜 과장된 종류의 미적 감응을 위한 장소가 있어서는 안 됩니까? 어떤 시대에는 타나그라 인형이또 어떤 시대에는 목판화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다면, 그 사이 이 엄청난 발전을 심히 왜곡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기계공정 그 자체에 존재했음은 19세기 이전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던 하나의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런 경향에 따라 예술과 기술, 상징과 기능은 지금 현대 건축의가장 우수한 작품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실제로 생기고 있는 한, 그토록 많은 붕괴의 징후를보이고 있는 우리 문명이, 아무런 목적 없는 권력의 미친 듯한 확대를 실제로 멈출 수 있고, 지금의 적대적이고 분열적인 경향을 효율적인 통합으로 이끄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즉 국제연합 사무국 건물 같은 후퇴는, 모든 장소의 모든 건물 중에서도 그런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마지막 강연에서 저는 예술과 기술 사이만이 아니라 현대인의 생활에서 분열된 모든 측면 사이에서 통합을 이루기 위한 더욱더 일반적인 조건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보편적이지 않다면, 예술도 기술도 오래번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더 냉정하고 강제적인 형식 속에서의 기계가 더욱더 지배한다는 점이 아니라, 삶의 재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테마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를 위한 첫걸음은 주도권을 쥐고, 삶을 위한 우리 자신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를 지배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 자신을 판에 박힌 일상생활로부터 충분하게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는 사물을장악해야 합니다. 그 규모가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예술이 한쪽으로 치우친 기술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창조나 재창조로서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의 상태와 구조 속에우리를 두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멈추어 서서, 침묵하고, 우리의 눈을 닫고서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일단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며, 우리 자신의 충동과 감정에 반응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그토록 쉽게 통제할 수 없는 감정과 정서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나락으로 떨어지는 허무나 잔혹한 악몽 대신, 우리 내면의 삶은 자기 수양에 개방적일 수있고, 개인적 행위와 예술에서 타인과의 더욱 결실 있고 사랑스러운관계를 맺게 하며, 예술의 상징을 통해 타인의 숨겨진 내면의 물길을우리 자신에게 흐르도록 할 것입니다.
풍경과 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수련과 함께 우리는 조만간 우리 시대의 속도와 리듬을 조정하고, 우리가 맞부딪히는 자극의 양을 통제하며, 우리의 집중을 조정하여, 우리가 하는 일이 기계의 외래적인 목적과 가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목적과 가치를 반영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우리 사회의 방식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모욕이 될 것이므로, 우리의 전진은 늦을 수밖에 없고, 수없이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보잘것없는 항의와 반대도 인간 정신의 주도권 회복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는 부적합한 것, 하찮은 것, 지루한 것을 거부할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의미 있는 좋은것들을 새로운 활기로 긍정하게 하는 더욱 적극적인 선택을 할 수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좋은 것들이 오로지 기계의 도움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때에도, 그것들은 우리가 명령하는우리의 것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숙고하고 향유하는 우리의 것이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재생이라는 큰 짐이 우리들 위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인격과 문화 속에서 재생을 낳을 힘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의미 있는 행동을 강제할 계획과 이상을 요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마취되고, 멍청하고, 비겁할 정도로소극적인 상태에 머무는 대신 충만한 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현재상태를 각성한다면, 예술과 기술이 지금 우리의 손에 쥐어 준 모든자원들에 힘입어, 우리의 삶을 새로운 모양으로 고쳐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아마도 하나로 결합된세계를 위한 초석을 놓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 적대중인 종족들, 국민들, 인민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속에서 마찬가지로 분쟁과 갈등 중에 있는 충동들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꿈은 다시금 쾌적하고 합리적 원칙으로 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예술은 형식과 구조와 의미를 되찾게 되고, 기계는 그것이 아무리 고도로 조직됐다고 해도 삶의 요구에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블레이크의 잠언을 자랑스럽게 뒤집어 이렇게 말할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술은 고양되고 상상력은 강화되며 평화는 모든 나라를 지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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