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슬픈 처지를 말하다 말고 하나밖에 없는 나의 당숙은 목이 메인다" 듯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 물기가 내뺐다. 그는 물기 머금은 눈을 들어 색름별 받는 푸울가의 벌거벗은 몸들을 보더니, 우리 큰애는 방학이 되어도 귀국4 생각을 못 한다고 말했다. 다음 학기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이 시간에도 잘 제대로 못 자며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하층 유색인종 틈에 섞여 땀 뻘뻘 흘릴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동생의 친구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웃었을것이다. 그녀들은 나라 밖 남의 경험에 대해 결코 호들갑 떨며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한둘은, 국적 분명하지 않은 젊은이와 알몸으로 잠자며 어느순간에는 땀 뻘뻘 홀릴테지 생각했을 것이다. 당숙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의들은 소문이 안 좋았다. 스스로 가난뱅이라는 말을 썼지만 당숙도 가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사랑할 것이 세상에 가득한 0.01 또는 0, 001 퍼센트를 보며 그는 불행해했다.
시간 여행자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남이 철을 쓸 때 우리는 동을 썼다. 옛싸움터에 가보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이 쓴청동제 대포의 포탄은 바로 포대 밑 바다에 떨어졌는데, 철선에 철대포를 싣고온 파란 눈의 서양 병사들이 쓴 대포알은 그보다 훨씬 먼 곳에서 하늘을 질러 날아와 우리 어른들의 포대를 산산조각내 버렸다. 우리는 계산을 할 줄 몰랐다 나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소년기와 청년기 일부를 겉으로는 온화하고 지혜가 많아 보였던 할아버지, 그러나 내심으로는 권력에 대한 한없는 욕망 때문에그 자신은 물론 추종자들의 장기간에 걸친 죄의 무게에 눌려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이승만 집권 시기에 보냈다.
역사 속의 눈물 얼룩을 들여다보아도 13, 14세기 눈물과 19, 20세기 눈물의 다른 점은 발견할 수 없다. 몇 세기라는 시간상의 긴 거리가 있는데도 눈물의 성질과 얼룩 모양은 비슷할 뿐이다. 이땅에서 살다 돌아간 어른들은 눈물로자신을 표현해 왔다. 그러면서 왜 눈물로 ‘각성‘ 할 수는 없었을까? 밝은 이야기를 담아내딘 텔레비젼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정말 큰봇물 터뜨려 만든 ‘눈물‘에 빠져 허위적거려야 했던 1983 년에도 나는 내내이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이 우리의 각성을 방해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무엇은, 앞으로도 우리의 각성을 방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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