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욥의 항의에 신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야훼는 정의와 선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도덕적인 의의 신이라는 가면을 버리고, 우주를 창조하고 성장시킨 전능의 신. 힘의 신(엘샤다이)이라는 경이로운 모습으로 폭풍속에서 등장했다. 그는 이제 욥의 도덕적 항의를 머리부터 딱 잘라 버리는 비도덕적인(antal) 신이다. 욥은 인간적인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장엄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본성을 가진 신과 만나는 순간 그의 도덕적 항의를 철회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어 "나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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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슈타인이 직면한 최초의 작전적 결단은 소련군을 동쪽으로 추격하는동시에 크림 반도를 점령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임무를동시에 수행해야 할까, 순차적으로 수행해야 할까? 그가 비장한 어조로 기록했듯이 이는 "사실 최고사령부가 책임져야 할 결정"이었다. 페레코프 공략은 제54군단에 맡겨졌으나, 제54군단 혼자 완수하기에는 너무 어려운임무였다. 소련군 F. I. 쿠즈네초프 상급대장의 제51 군은 최근 페레코프 방어를 위해 3개 민병사단을 모집했고, 3개 사단을 더 모집 중이었다. 따라서 크림 반도에 주둔한 소련 병력은 곧 12개 소총병사단과 4개 기병사단으로 늘어날 터였다. 이들의 자질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쨌든 만슈타인이 결론을 내렸듯이, "단 3개 사단이 완강하게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제54군단의크림 반도 진입을 충분히 막을 수 있거나 적어도 지협을 통과하는 제54군단에게 심각한 전투 손실을 입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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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회 작용들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회 작용을의 원인이기도 한 획기적인 그 무엇이다. 예술이 스스로사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신쪽으로 허둥지둥 뒷걸음질 친 것은 사진 때문이다. 새로운소재 피사체-king를 재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도 사진이고, 리얼리즘과 현실의 문제, 표층과 심층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사진이다. 가치를 묻는 질문(가격이 얼마냐, 예술적가치가 얼마나 있느냐)을 하게 만든 것도 사진이고 수용자(갤허리에 가서 시지각 문화를 관람하는 수용자가 아닌, 매체에 동화된 수용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도 사진이다. 사진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복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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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승려가 속세를 버렸다고 해서 생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과 함께 하여 그 뜻을 펴고자 하려는 또하나의 생활이 책임지워진 것과 같이 예술도 결국 그렇듯 사는방식임에 지나지 않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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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월절의 이야기하고 예수께서 지금 하는 이야기하고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만찬하시고 자기도 죽어요. 아시겠습니까?
성만찬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이거 어떻게 연결이 되어야 되요? 쉽게 이야기할 때에는, ‘유월절에 양을 죽여서 이스라엘사람들의 문지방에 피를 묻히고, 그것이 이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피가 뚝뚝 흘러서 죽은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생각하십시다. 이렇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세요. 이것 참 깊은 진리가 이 안에 숨어 있고, 정말 힘있는, 우리의 생명의 길이 그 안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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