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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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밥상에서 "나 오늘 카페에서 책을 읽다보니 세 시간이 지났더라. 대박이지? 난 엉덩이가 무거운 여자였어."라고 했더니 아들녀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걸 이제야 알았다고?"하며 풋, 웃는다. 또 얼마 전에는 너무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부었다고 하니, 부운 것만은 아닐거라고 놀린다. 분해서 잔뜩 흘겨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1년전에 비해 8킬로그램이나 살이 쪘고 작아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우리 강아지 송이가 자꾸만 내 배위로 올라와서 자리를 잡고 잠을 잔다.
확실히 사진을 찍어 보면 후덕하게까지 보이는 낯선 아낙네가 나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
그런 이유로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출간 소식을 읽고는 재미있겠다고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약본 오디오북도 호기심에 구입했는데 기대보다 더 잘생긴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주시는 내용이 귀에 쏙쏙 박히게 재미있었다. (오디오북도 권하고 싶다.)책을 읽을 때에도 작가님의 음성이 활자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꼈다.
제목을 보고 다이어트 성공기나 다이어트 권장기(?)를 상상했지만 사실 이 책은 작가가 일과 생활, 인간관계 등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솔직하게 풀어낸 유쾌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위로였다.
과거의 영광을 트로피처럼 내세우며 '내가 왕년에 말이야.'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예전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비굴한 나.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길 전철에서 옆사람이 팔꿈치를 내 옆구리에 올려둔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때, 내 옆구리가 팔꿈치 받침대로 딱인가봐,하고 생각하거나 옆사람들과 엉덩이를 찰싹 붙인 채로 앉아서 황정은 작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 적힌 '포장용기에 든 찰떡'같은 신세가 된 나를 한탄하는 나.
긴 전철 여행을 마치고 갈증과 가짜 허기를 느끼며 맥주에 치킨 또는 족발을 흡입한 나를 질책하고 싶은 나.
이런 나를 한심해하지 않고 다독다독 해줄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책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p.179~171)

스트레스와 다이어트 사이에서 길을 잃은 그대들이여. 스스로에게 '오굶자'의 위로를 선물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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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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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간>

원래도 책을 빨리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다 읽는 데 2주가 넘게 걸렸다.
작가가 책머리에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에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라고 적어서가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사들의 이름, 방대한 예술관련 지식들을 빠르게 흡수하기 어려워서 자꾸만 읽고 또 읽고 앞 페이지를 도로 넘겨 봐야만 했다. (실제로 작가가 참고한 참고문헌을 기록한 페이지가 20페이지 반에 이른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빠른 성과를 내려고 안달복달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는 불만족감에 빠져 좌절한다
이 책은 빠름에 길들여지고 순간의 만족에 매혹당한 우리들에게 어떤 대상에 대해 시간을 들이는 것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특히 SNS에서의 자기과시 중독에서 벗어나 자기자신을 순수하게 들여다보며 자기 행동을 의미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한다.

33년의 세월을 들여 직접 주워온 돌멩이로 '꿈의 궁전'을 지은 페르디낭 슈발, 639년을 연주해야 끝나는 곡을 쓴 존 케이지, 소설 <늦여름>을 통해 휴식과 게으름에 대한 질문을 던진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자연과 도시풍경의 연대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사진으로 기록한 미하엘 루에츠, 인생의 마지막 13년동안 침대에서 세기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한 마르셀 프루스트는 모두 느림의 미학을 실천한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특히 로베르트 발저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스스로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하찮아 보이는 일을 하며 종이쪼가리, 영수증, 업무용 서류, 신문지 여백에 깨알 같이 적은 그의 글씨가 거의 20년에 걸친 해독작업 끝에 여섯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꼭 찾아서 읽어보리라고 마음 먹었다.

느린 것, 시간을 들인 것의 아름다움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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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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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장편소설을 밤을 새워 단숨에 후루룩 읽기는 20대 중반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유진과 유진>, <벼랑>,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등으로 유명한데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을 안타깝게도 나는 읽어보질 못했다.
처음 접한 작가님의 문장은 담백하고 수수해서인지 술술 잘도 읽혔다. 화장기 하나 없고 깔끔한 비누 냄새가 나는 여인이 떠오르는 문체라고 할까. 더불어 맛깔스런 사투리는 자꾸만 따라 읽게 되었다.

백년 전 일제강점기, 같은 마을에 살지만 신분이나 성격이 각자 다른 세 소녀 버들, 홍주, 송화는 저마다의 이유로-그러나 조선을 떠나야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한마음으로-사진신부가 되기 위해 포와로 떠난다.
방물장수 부산 아지매의 말에 따르면, 포와는 나무에 옷과 신발이 주렁주렁 열리는 곳이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랑감들은 이미 경제력을 갖춘 젊고 건장한 젊은이들이란다.
하지만 길고 험난한 여정의 끝에 만난 현실은 그간의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가난을 피해 떠나왔지만 더 힘든 노동이, 신분상승을 꿈꿨지만 더 뿌리깊은 차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공동체를 만들어 돕고 의지하는가 싶던 조선 사람들은 어느샌가 이승만파와 박용만파로 갈려서 싸우고 등을 돌리는데, 답답한 정치적 반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 남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엄마로서 억척스레 생활을 꾸려가는 버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넘어 태완에 대한 원망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보다.
독립운동가들, 그들의 가족들의 고달팠을 삶에 대해서도 숙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레이, 무지개, 파도.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p.324)

세 여자의 연대가 아름답고도 눈물겹다. 그리고 진주가 열어버린 판도라상자. 끝까지 읽으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인지 깨닫게 된다.

잘 만든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
힘든 시기, 감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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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 내리는 밤에 제 몸집만 한 여행가방을 들고 아파트 경비실에 찾아와 하룻밤 재워달라는 고양이 깜냥.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경비원 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딱 하룻밤인걸요. 그럼 실례할게요."하고누 경비실 안으로 들어와 참치 캔도 맛보겠다고 당당하게 청한다.
하지만 마음 약한 할아버지가 똑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이에 깜냥은 아파트를 누비며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부모가 외출해서 둘만 남겨진 형제와 놀아주고 층간소음 민원도 해결한다. 택배기사 아저씨를 도와서 택배를 배달하기도 하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아주머니의 구박에 조금도 기죽지 않고 말대답을 한다.
깜냥은 길고양이지만 격식을 차리는 편이다. 참치를 먹기 위해서 포크와 나이프를 꺼내고 턱받이까지 두른다. 잠자리 준비도 완벽하다.

가방에서 이불을 꺼내 경비실 바닥에 깔고 베개, 눈가리개, 귀마개도 준비했지. (p.11)

깜냥은 귀여운 허세꾼이기도 하다.

"괜찮다면 조금만 맛볼 수 있을까요? 원래 아무거나 안 먹는데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요."(p.9)

"원래 나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너희가 무섭다고 해서 같이 있어 주는 거라고!"(p.24)

시종일관 '원래 난 이런거 안하는데....'라면서 도도한 척하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알고보면 재주도 많고 눈치 빠르고 사랑스러운 고양이 깜냥.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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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가짜 뉴스가 뭐야? 10대를 위한 글로벌 사회탐구 1
카롤리네 쿨라 지음, JUNO 그림, 김완균 옮김, 금준경 해제 / 비룡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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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책에 적힌 말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사실이라고 여겼다. 하물며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뤄진 기사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지금도 어떤 뉴스에 대해 맹목적으로 혹할 때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가 어렵다. 아주 구체적인 수치나 도표를 제시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 책은 언론의 전반을 친절하게 안내하며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 배경, 오보와는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퍼지는지를 보여준다.

필터링된 정보에 갇히는 '필터버블', 닫힌 방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 소리만 메아리처럼 계속 접하는 '에코 체임버', 신기하거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는 클릭베이트 등 바람직하지 않은 트렌드도 소개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페터 비에리는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을 통해 가짜 뉴스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식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 줍니다.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쉽사리 속아 넘어가지 않고, 누군가가 그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용해 먹으려 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p.164)

나는 학생들이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었으면 한다. 3, 4주 동안 1~2장씩 같이 읽으며 모둠별로 실제 가짜 뉴스를 찾아 발표하는 독후활동을 하면 유익할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말미에 있는 금준경 기자의 해제도 꼼꼼히 읽어 보길 권한다.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지혜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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