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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장편소설을 밤을 새워 단숨에 후루룩 읽기는 20대 중반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유진과 유진>, <벼랑>,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등으로 유명한데 이금이 작가님의 작품을 안타깝게도 나는 읽어보질 못했다.
처음 접한 작가님의 문장은 담백하고 수수해서인지 술술 잘도 읽혔다. 화장기 하나 없고 깔끔한 비누 냄새가 나는 여인이 떠오르는 문체라고 할까. 더불어 맛깔스런 사투리는 자꾸만 따라 읽게 되었다.
백년 전 일제강점기, 같은 마을에 살지만 신분이나 성격이 각자 다른 세 소녀 버들, 홍주, 송화는 저마다의 이유로-그러나 조선을 떠나야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한마음으로-사진신부가 되기 위해 포와로 떠난다.
방물장수 부산 아지매의 말에 따르면, 포와는 나무에 옷과 신발이 주렁주렁 열리는 곳이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랑감들은 이미 경제력을 갖춘 젊고 건장한 젊은이들이란다.
하지만 길고 험난한 여정의 끝에 만난 현실은 그간의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가난을 피해 떠나왔지만 더 힘든 노동이, 신분상승을 꿈꿨지만 더 뿌리깊은 차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공동체를 만들어 돕고 의지하는가 싶던 조선 사람들은 어느샌가 이승만파와 박용만파로 갈려서 싸우고 등을 돌리는데, 답답한 정치적 반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 남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엄마로서 억척스레 생활을 꾸려가는 버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넘어 태완에 대한 원망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보다.
독립운동가들, 그들의 가족들의 고달팠을 삶에 대해서도 숙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레이, 무지개, 파도.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p.324)
세 여자의 연대가 아름답고도 눈물겹다. 그리고 진주가 열어버린 판도라상자. 끝까지 읽으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인지 깨닫게 된다.
잘 만든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
힘든 시기, 감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