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밥상에서 "나 오늘 카페에서 책을 읽다보니 세 시간이 지났더라. 대박이지? 난 엉덩이가 무거운 여자였어."라고 했더니 아들녀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걸 이제야 알았다고?"하며 풋, 웃는다. 또 얼마 전에는 너무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부었다고 하니, 부운 것만은 아닐거라고 놀린다. 분해서 잔뜩 흘겨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1년전에 비해 8킬로그램이나 살이 쪘고 작아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우리 강아지 송이가 자꾸만 내 배위로 올라와서 자리를 잡고 잠을 잔다. 확실히 사진을 찍어 보면 후덕하게까지 보이는 낯선 아낙네가 나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그런 이유로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출간 소식을 읽고는 재미있겠다고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약본 오디오북도 호기심에 구입했는데 기대보다 더 잘생긴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주시는 내용이 귀에 쏙쏙 박히게 재미있었다. (오디오북도 권하고 싶다.)책을 읽을 때에도 작가님의 음성이 활자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꼈다.제목을 보고 다이어트 성공기나 다이어트 권장기(?)를 상상했지만 사실 이 책은 작가가 일과 생활, 인간관계 등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솔직하게 풀어낸 유쾌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위로였다. 과거의 영광을 트로피처럼 내세우며 '내가 왕년에 말이야.'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예전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비굴한 나.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길 전철에서 옆사람이 팔꿈치를 내 옆구리에 올려둔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때, 내 옆구리가 팔꿈치 받침대로 딱인가봐,하고 생각하거나 옆사람들과 엉덩이를 찰싹 붙인 채로 앉아서 황정은 작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 적힌 '포장용기에 든 찰떡'같은 신세가 된 나를 한탄하는 나.긴 전철 여행을 마치고 갈증과 가짜 허기를 느끼며 맥주에 치킨 또는 족발을 흡입한 나를 질책하고 싶은 나. 이런 나를 한심해하지 않고 다독다독 해줄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책이다.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p.179~171)스트레스와 다이어트 사이에서 길을 잃은 그대들이여. 스스로에게 '오굶자'의 위로를 선물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