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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소민 작가가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에 언급한 대로 이 책은 '포털 사이트 인물 검색에 나올 것 같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p.6)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라고 시작부터 선을 긋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이 소설에 매혹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작은 농가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힘든 노동으로 일찍 늙어버린 부모님의 배려로 새로 생긴 농과대학에 입학하는데 2학년 영문학개론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듣고는 문학과 사랑에 빠져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제1차세계대전으로 동료들이 군대에 자원하거나 징집되었지만 그는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대학에 남아 공부를 계속한다.
첫눈에 반한 이디스에게 청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딸 그레이스를 얻지만 이디스는 부모에게서 벗어나려고 결혼에 응했을 뿐, 그에게 단 한 번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디스는 신경증적이고 자기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허영심이 많은 사람으로 늘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했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자 집을 바꾸고 외모를 바꾸는 일에 몰두하며 스토너를 박대한다. 스토너는 묵묵히 아이를 돌보고 홀로 식사를 해결하고 강의를 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그에게 위안이 된 것은 바로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 (p.157)
아내의 눈에 띄어 분노를 사지 않으려고 그림자처럼 살던 스토너에게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캐서린이 나타난다. 그의 강의를 들으며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캐서린은 유일하게 스토너를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토너가 처음으로 캐서린을 찾아갔을 때, 그를 걱정하는 캐서린에게 스토너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예요." (p.262)
나는 이 말이 그의 삶을 관통하는 관조와 인내를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출세지향적인 동료교수 로맥스의 협박으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지만 훗날 캐서린의 책이 출판되었을 때 헌사에 암호처럼 그의 이름이 적힌 것을 발견한다.
스토너가 이디스와 로맥스를 미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캐서린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 깊은 고독 속에서 인내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낸 스토너에게 깊은 연민과 존경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정말 불행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평생 만족할 줄 몰랐던 이디스와 일그러진 출세욕과 자격지심으로 그를 미워했던 로맥스가 아닐까?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소설이지만 수수하고도 정교한 문체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스토너가 많은 시간을 보낸 대학의 제시홀과 캠퍼스 풍경, 섬세한 심리묘사도 소설의 매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