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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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쓸 말이 없었다. 좋은 책을 읽으면 ‘우와’라고 감탄한 뒤 책을 덮는다. 무언가 할 말이 더 생긴다면 책이 나를 온전히 사로잡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를 사로잡아서 다소 황홀한 얼굴로 엄청났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이 책의 매력을 찾지 못했을 몇몇 사람을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리고 서평용으로 받은 도서라서 더더욱 써야 했다.)


소설을 읽는 이유나 재미를 느끼는 코드는 독자마다 다르고, 한 독자 안에도 여러 코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일단 소설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그 자체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서사 외에 문장이 좋거나, 인물 간의 구도가 취향이라거나, 분위기가 좋다거나, 묘사가 좋다거나, 이런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 일단 내 기준은 낮다. 오랜 시간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만을 즐겼다. 내가 책을 즐긴 시간은 내 나이랑 얼추 비슷하다. 그러니 삶의 대부분은 소설을 그저 흥미 위주로만 읽었다는 말이 되겠다. 지금도 일차적으로는 그렇다.


최근 변화가 생겼다. 소설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추게 되었다. 그 시야는 그냥 열리지 않았지만, 일단 열리고 나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의 시각이다. 나는 원체 세심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다. 이 책이 내 관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책의 저자 조지 손더스는 안톤 체호프의 ‘마차에서’로 본문 첫 장을 시작한다.


“포장도로는 말랐고 찬란한 4월의 태양이 온기를 뿌렸지만(*저자 강조) 도랑과 숲에는 여전히 눈이 있었다. (…)”(30p)는 도입부부터 다룬다. ‘행복의 조건은 존재하지만(*저자 강조)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서술에는 체호프의 의도가 있다. 이어지는 문장과 두 번째 문단에서 이 의도가 조금 더 명확히 보인다. 이 목소리는 주인공 마리야 바실리예브나의 상황과 부합하고 그녀의 관점과 가깝게 말한다. 그녀는 새로운 것도, 변화가 오리라는 희망도 없이 무료한 일상 루틴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체호프는 첫 장에서 ‘이야기의 관심사’를 좁혀 놓았다. 그는 다음 장을 어떻게 이을까?


마리야의 부모는 오래전에 죽고 오빠와는 연락이 끊겼다. 전에 가지고 있던 물건 중 남은 것은 어머니의 사진뿐이었는데, 그마저도 흐릿해져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녀는 부모가 죽고 경제적 필요로 어쩔 수 없이 이 읍내에서 교사로 일하며 거주한다.


손더스는 체호프가 ‘구조’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고 한다. “이야기가 독자에게 묻게 만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조직적 구도”(37p)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체호프는 독자의 “마리야가 어쩌다 이런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불운이 있었다.”고 답한다. 손더스는 “좋은 구조를 만들고 싶다면 그저 우리가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는지 의식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만 하면 된다”(37p)며, 구조는 쉬운 것이라고 이기죽거린다.


이 장에서는 세묜과 하노프라는 두 인물이 등장하지만, 나는 하노프에 주목하고 싶다.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탄 하노프라는 이름의 지주”가 마리야에게 인사한다. 손더스는 이 사건이 이 페이지의 큰 사건이고, 첫 페이지에서 주인공을 만든 뒤 “절대 오랫동안 정적인 상태로 머물지 않았다”고 썼다. 이렇게 덧붙인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야기의 속도 대 진짜 삶의 속도에 관해 뭔가 이야기해 준다. 이야기가 훨씬 빠르고 압축적이고 과장되어 있다. 이야기는 늘 새로운 일, 이미 일어난 것과 관련이 있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40p)


하여튼 우리는 하노프를 보며 솔직히 말해서 하노프가 마리야의 연인 후보이며, 두 사람이 이어지면 마리야의 외로움과 경제적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작품에서 인물 간의 관계와 이야기 전개가 이렇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가 예상하기 쉽다. 이미 알고 있듯 하노프는 지주에 부유하다. 독자인 내 기대를 더하자면 그는 마리야보다 열 살가량 연상에 잘생기고 독신이며, 그 자신은 외로움을 자각하지 못했거나 자각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삶에 들어와야 한다. 이 남자 역시 마리야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서로에게 필요한 상대다.


체호프는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줬을까?


다음 장에서 체호프는 마리야가 나와 같은(!) 시선으로 하노프를 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잘생겼고 여자들에게 매력이 있다. 혼자 산다. 마리야 또한 그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노프는 “기도문 하나 기억하지 못했고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몰랐으며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사려 깊었으며 가장 높은 점수만 주”는 시험관이었다. (43p) 그는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집에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마차는 계속 움직이고, 마리야는 학교 생각에 잠긴다.


짧은 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많다. 하노프는 다정하고 멍청하다. 두 사람은 구면이다. 마리야는 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전에도 현시점에도 희망적인 신호는 없었던 듯하다. 바로 학교 생각에 잠기는 걸 보면 말이다. 체호프는 내가 하노프에게 가진 예상을 일부 충족시켜 줬으면서, 이 예상과 상반되는 다른 점도 보여준다. 다음 장에서는 마리야의 학교 생각, 마리야가 하노프를 여전히 의식하고 있다는 점, 그러나 하노프는 어리석다는 점을 서술한다. 내 기대와 점점 멀어진다. 



이 책 본문의 첫 장 서두에서는 손더스와 <뉴요커>의 소설 편집자 빌 버포드와의 대화를 언급한다.


(…)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빌의 마음에 드는 게 뭡니까?” (…) “음, 한 줄을 읽습니다. 그러면 그게 마음에 들어요… 다음 줄을 읽어볼 만큼.”(23p)


손더스가 이해했듯이 ‘소설을 쓰는 데 큰 이론은 필요 없’으며 ‘합리적 인간이 네 번째 줄을 읽다가 다섯 번째 줄로 넘어갈 만큼 마음이 흔들’리게 하면 된다. 체호프는 엄청난 기술과 기교를 이 단편에 넣지 않았다. 소설가가 체화하고 의도에 적절하게 계획해서 자연스럽게 넣은 구성이다. 단편 소설은 짧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을 끼워 넣음으로써 낭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문단, 한 문단이 소설에 관해 잘 설명해 주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대단한 기술과 기교가 아니다. 그가 체득한 것이다.


세심하지 않은 독자는 쓰는 이의 의도를 모두 읽어낼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으로 쓰는 이의 의도와 구성을 엿볼 수 있다면 앞으로의 독서는 풍성하고 더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첫 문단을 배반하는 다음 문단. 정의를 내린 뒤 사례를 덧붙이는 패턴이 반복되는 책. 주변에 찰흙을 두텁게 붙이고 조금씩 깎아가며 주장에 접근하는 글. 이런 걸 알아차리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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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는 법 -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에 관하여 땅콩문고
문주희 지음 / 유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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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인지 감상을 바로 남기고 잊지 않고 싶어서 후기를 남깁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습니다. 유유의 땅콩문고가 늘 그렇듯 술술 읽을 수 있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군요...


 저자이신 문주희 선생님도 그러시겠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것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지 않지만 아날로그 시대 또한 경험했습니다. 아이패드에 하는 필기보다는 손으로 하는 필기가 더 편한 사람입니다. 공간 문제로 전자책을 사들이고 있지만, 책이 가진 물성의 매력도 잘 느낍니다. 2023년 현재 아날로그 시대를 산 사람이 많아서, 디지털 세대에게는 뉴트로처럼 '힙함'으로 다가와서 복고 열풍도 불고 아날로그식이 유효한 거겠죠...


 저는 이 책이 상정한 독자는 아니지만, 타인의 편지에 관한 추억이나 편지 쓰는 방법 등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타인이 보낸 편지에서 찾은 나에 관한 문장이나 문인의 서간문을 필사하는 것도 편지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겠어요. 편지 가게 '글월'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연남점이나 성수점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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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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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소설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서평의 구조가 좋다고 생각함 안데르센 동화집 서평을 가장 먼저 둔 건 좋았어요 책에 대한 첫인상이 훌륭해짐 그 서평... 가슴을 뜨겁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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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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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순으로 편역했는데 첫 글이 난이도가 너무 높아요... 독문학에서도 세계적으로 그렇게까진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 알아야 읽을 수 있는듯. 헤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전 헤세 작품도 안좋아해서 그저 그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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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읽기 - 텍스트 해석의 한계를 에코에게 묻다
강유원 지음 / 미토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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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되팔렘들에게 비싸게 사지 마세요. 강유원 《책 읽기의 끝과 시작》에 부록으로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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