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삶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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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는 사회주의자, 표지는 붉은색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물건의 양은 얼마나 될까? 볼펜은 몇 자루가 필요하고, 스마트폰은 몇 대가 필요하고, 가방은 몇 개가 필요할까?

사람마다 생활 방식이나 환경이 다르니 개인차가 선명하겠지만,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산다.

중학생 때 선물로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받았다. 그다음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2022년 한정판까지, 같은 만년필을 여러 자루 샀다. 펜이 너무 많아서 대다수는 서랍에 넣어 두고 몇 자루만 쓰고 있다.

예쁜 스티커가 많고, 값도 절대적으로 비싼 게 아니라서 사들인다. 새로운 상품이 매일 쏟아지니, 그만큼 구매도 많은 게 다꾸(다이어리 꾸미기)판이다. 텀블러 바닥에 흠집도 났고, 이걸 이 년 넘게 썼으니 바꾸고 싶다. 마침 텀블러에는 또 수명이 있다지 않나. 텔레비전을 틀고 광고를 보니 지금 가전도 쓸만하지만 새로운 게 사고 싶어졌다.

이건 나의 일상이고, 매일 하는 생각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장담할 수 있는데, 나만의 일상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기업이 생산한 상품이 팔려야 굴러간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새삼스럽다. 나라를 위해서 대기업이 잘되어야 하고, 밀려드는 해외 상품 대신 국산품을 사서 써야 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기업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품을 많이 사야 한다.

그리고 난 이런 것에 신물이 난다.

마음 맞는 펜 몇 자루만 있으면 되는데, 왜 똑같은 펜을 양손 가득 쥐어도 부족할 만큼 샀지? 왜 스마트폰은 이 년만 쓰면 배터리 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거야? 아직 쓸만한데 왜 신상 나왔다고 바꾸는 거지? 값은 또 왜 이리 비싸? 월급 빼고 다 오르네.

여기까지 읽고 그저 ‘자기가 자제해서 조금만 사면 되는데 지금 남 탓을 하는 것임?’ 이라거나, ‘그렇게 사는 게 뭐가 나쁨?’ 혹은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짜 그럴까?

우리 집 가전과 내 나이가 엇비슷하다. 냉장고와 텔레비전과는 터울이 좀 있는데, 이유는 전임자의 본연의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식과 연배가 비슷한 가전도, 가장 어린 가전도 오래됐으니 바꾸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쓸만한데 바꾸는 건 낭비라는 고집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내수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집을 나가면 모두가 새 가전을 쓰고 있고, 그게 바람직하다고 한다. 나는 가전 이야길 안 하므로 내게 가전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바꿔야 한다는 사람도 없지만, 메시지는 꼭 직접적인 말로만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집안에서는 그런 메시지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광고는 계속 우리의 삶이 부족하다고 한다. 삶을 완성하는 방법은 바로 현재 광고하는 이 상품을 사는 것이다. 이걸 사면 삶이 완성될 것처럼 속삭인다. 멋진 이미지와 함께. 그 이미지는 가끔 아니, 때때로, 아니! 자주 환상이고, 그게 감수성을 누르니 손가락 또한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주문.

어떤 사람들이 모른 척하거나, 간과하거나, 외면하거나, 그나마 진실에 가까워 봐야 많이 축소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은 자기가 사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어떤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없다’ 대신 ‘힘들다’고 쓴다. 내가 물건 안 사고 오래 쓰려고 마음먹으면 뭐 하나? 광고, 지인들의 인식, 내가 살아온 사회의 가치관, 심지어는 물건조차 오래 버틸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내가 읽은 자본주의에 반하는 몇몇 글과 책은 자본주의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기후 변화라는 말을 넘어 기후 위기라고 하는 이 시대에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기차이며, 멈출 수도 없다. 돈을 벌려면 상품을 팔아야 한다. 상품을 팔려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상품을 만들려면 자원을 갖다 써야 한다. 우리가 아는 대로 기업은 무분별하게 나무를 베는 등 환경을 파괴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성찰할 필요가 있고,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복지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으며, 사회주의에 더 가까워지면 좋겠지만, 이 글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개인 차원에서 몇 가지 노력한다. 개인이 환경을 위해 일반적으로 하는 그런 방법들, 나도 쓴다. 세세하게는 음료 마시고 세척해서 버리기. 세척하기 쉬운 음료 마시기.

그리고 기준 잘 잡고 거기서 흔들리지 말기. 정말 다양하게 사야 하는 물건과 그럴 필요가 없는 물건 구분하기. 전자는 책인데, 책 한 권만 사서 죽도록 읽는 건 위험하다. 가능하다면 종이책 말고 전자책을 산다. 후자는 냉장고. 살아 보니 망가질 때까지 써도 무리 없다. 버릴 때 생각하기. 플라스틱 재질이거나 코팅된 스티커가 특히 그런데, 일기장 버릴 때 난감하다. 무엇보다도 있는 물건 잘 쓰기. 새 물건은 기존 물건이 망가지면 사자고 자기를 잘 (뜯어) 말리기. 아. 어렵다.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책은 노동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면도, 일상적인 변화를 주는 면도 있다. 사람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인민과 대의를 위해 사는 게 쉬운 것도 아니니 주로 내 일상을 붉은 눈으로 바라본다. 물건을 계속 사게 만들고, 내가 거기에 잘 휩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신물을 느꼈다.

그래서 임승수의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근래 한국문학의 맥락에서 에세이가 가진 장점을 잘 살렸다. 에세이는 좋아하지 않지만, 타인의 삶을 직접 생생하게 느끼며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저자의 말대로,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고난을 감내하며 ‘대의’ 혹은 ‘허상’을 위해 헌신하며 살지 않는다. 현재의 행복을 누리면서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간다. 읽기를 권유한다. 이러한 삶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삶이 지향하는 가치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는 것을.

제목은 사회주의자, 표지는 푸른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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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글쓰기 - 시각예술가를 위한 작문 가이드
비키 크론 애머로즈 지음, 임지연 옮김 / 미진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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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었어요. 파트1 작가의 말이 유용했습니다. 작품 앞에서 떠오른 느낌과 생각을 스스로 충분히 음미하도록 관객들을 존중해야만 한다. (47p) 전문지식과 허세로 가득한 미술용어들로 과도하게 진지한 글을 쓰지 말라고도 하고요. 다른 글쓰기나 자기소개에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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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을유세계문학전집 (총100권)
을유문화사 편집부 / 을유문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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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가격에 정말 잘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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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3-06-1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e북으로 사면 되는군요~~종이책으로 들여놓고 싶어 침만 질질했더랬죠 ㅎㅎ

책식동물 2023-06-14 22:57   좋아요 0 | URL
ㅋㅋㅋ저는 고전문학을 좋아해서 같은 책도 여러 번역으로 읽고, 소장욕구도 무척 강한 사람이어서 전자책 단말기 하나 사서 열린책들 을유 펭귄 문예 100권, 250권 시리즈 이런 걸 사놨어요... 엔간한 책은 다 있어서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eBook]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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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이 자연스럽고 좋으니 결국 이 책은 내게 ‘화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주변의 생생한 현실을 감상하고 느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듯. 넵. 제가 도둑맞은 집중력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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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김용언 외 지음 / 문예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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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자면 인도 사람의 시각으로 영국인 제국주의자의 문학 작품을 비평하는 책 아닌가요? 고전을 내는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냈다는 건 그래도 나름 중립적입니다. 제목 때문인지 구매도 안 하고 별점을 남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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