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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의 형태 - 여태현 산문집
여태현 지음 / 부크럼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아담한 크기의 디자인이 예쁜 책이다. 요즘 시대에 맞는 기분 좋은 질감과 책표지 디자인, 제목을 가진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태현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접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 한가운데에서 적은 산문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넘겼다.
책은 제목에 충실하며 온 페이지를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과 같이 크게 세가지 이야기로 구분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다정함의 형태.
두 번째 이야기, 나를 다정하게 만드는 것들.
세 번째 이야기, 체온 그 다정함
내가 해석한 각 이야기를 구분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작가는 다정함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다정함을 정의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그것에 접근해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다정함. 뜻과 소리가 따듯한 느낌을 가졌다.” 다정함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따듯함과 포근함을 이야기한다.
다정함의 반대편에는 공허함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한 다정함은 불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사랑과 다정함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공존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대상에서 무한히 다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정함에 대해서 나름의 정의를 내리며 첫 번째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지극히 작가 개인적이다. 작가가 느끼는 자신을 다정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인형, 양말, 사전, 허니버터감자침과 같이 유형의 것일 수도 있지만 다정한 표정, 꿈, 글쓰기와 같이 무형의 것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형태의 유무형의 것들이 나열되면서 작가의 삶과 그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한 번쯤 우리도 나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다정함을 느끼고 무엇이 나 자신을 다정하게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겠다.
읽으면서 생각이 드는 부분은 작가가 양말을 참 좋아한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깊은 사색과 의미 부여를 통해 다정함과 같은 감정을 연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외감이 든다.
세 번째 이야기는 “체온, 그 다정한”이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가 경험한 사람과 그의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지나온 추억들을 공유하면서 그 하나하나의 다정함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그 중 몇가지 다루고 싶은 부분이 있다.
“친구가 된다는 건 서로 다른 두 개의 생경한 세계가 만나 일종의 교집합을 갖게 되는 일이다.”
“친구가 되기 위해선 어떤 시간을 인내해야만 한다.”
비단 친구라는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친분을 쌓는 과정에서 시간이라는 것은 응당 치뤄야할 대가라고 볼 수 있겠다.
서로 다른 길을 그의 인생의 시간동안 걸어왔기 때문에 그 가려진 시간을 단시간에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연애를 시작하면, 일정한 만큼의 자아를 덜어내야 한다. 덜어낸 자아는 곱게 볕이 들지 않는 곳에 켜켜이 보관한다.”
사랑하면서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나라는 자아라고 해서 비켜가지는 못한다. 그런 것을 감내하며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사랑에 빠지면 응당 그렇게 되기 마련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구분되는 실루엣을 알게 되는 거, SNS에 올라온 그림자 사진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게 되는 거.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란 사실을 단번에 이해하게 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감정에 대한 표현이다. 사랑에 빠져보았던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짧으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 책을 통해 겉으로는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엔 작가의 인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감정과 인물 관계에 대한 추억과 감정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독자가 그것을 읽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묘사가 이 책에는 담겨있다.
작가가 보냈던 깊은 성찰의 시간만큼 책의 깊이는 더 해지고 독자의 공감은 커지는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