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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평점 :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 푸른숲
평전, 이 책을 통해 발자크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함께 하고 나니 애잔한 연민이 생겨났다. 발자크는 자신이 천재인지도 모르고 능력을 낭비하며 허영심에 가득차 유치한 생각으로 세속적인 출세에 쉽게 몸을 굽힌 위험한 사람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막일꾼'이 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필해 글을 쓰기도 했으며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벌어들이고자 하는 소설 공장의 노예 상태의 삶, 하는 일마다 참담하게 실패하는 사업까지 지독히 그는 박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구보다 엄격하게 자신의 글을 관리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허세와 속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은 훗날 슈테판 츠바이크에 의해 평전으로 탄생했고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일대기를 벗어나 소설 형식으로 그려진 서사여서 지루함 없이 잘 읽어낼 수 있었다.

발자크는 비극적인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가족이라는 것은 증오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냉정했던 발자크의 어머니는 히스테리 성향을 지녔고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돈을 쓴다는 것은 범죄라 생각했으며 아들을 낳자마자 자신의 품에서 떼어 내 유모의 손에서 키우게 하였다. 집이 부유해졌음에도 발자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낯선 집에서 하숙을 하며 1주일에 한번씩만 가족을 손님처럼 만나러 올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 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고 동생들과 마음대로 놀수도 없었다. 이후 기숙학교로 보내져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만이 그를 살게하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우리가 읽었고 두뇌 속에서 삶을 지탱해준
도서관의 책들이 없었다면 이런 삶의 체제는
우리를 완전히 야만성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 외에 발자크의 외모는 정말 볼품 없었다는 설명의 구절이 많았다. 작은 눈, 뚱뚱하고 땅딸막하며 검고 기름진 갈기머리와 불거진 뼈, 커다란 입에 상한 치아, 말할때 유달리 튀는 침 등 완전 비호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여인들에게 구애하고 또 사랑을 하고 만나고 헤어진다. 부모의 사랑에 대한 결핍, 정서적 공허함 등 자신을 가족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해 줄 어떤 여자와도 결합할 각오가 되어있었고 여자의 성격, 외모, 멍청함 등은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로지 많은 재산을 가진 과부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이상형이었다. 그런 이유에 자신보다 연상의 여자들을 만나려고 했고 주변의 추측과 악의적인 소문따위는 염려될 것이 없었다. 특히 발자크는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 곧 꺾이지 않는 마음이 강해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느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수 없었다. 발자크가 생각하는 젊은 여성에 대한 가치관은 이러했다.
"마흔살의 여자는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스무살의 여자는 아무 일도 안 한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아무것도 줄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같고 애인이자 친구이며 동반자인 연상의 여자에게서 사랑을 갈구했었다. 그 시대 여성들이 유행을 타는 작가들을 무조건 찬미하기도 했는데 돈문제로 늘 골머리가 아팠던 발자크는 여자복은 있었다는 생각이다. 쥘마 카로라는 여성은 일찌기 발자크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헌신적이고 정직했으며 발자크와는 더할수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녀는 발자크의 삶이 칸탈로스의 운명(목까지 물이 찼으나 그 물을 마시지 못하는 신화 속 인물)과 같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스로에게 귀족의 호칭을 내리고 겉모습이 효력을 가지는 세상에서 더 많이 가진 것 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 자신의 글을 통해 충분히 인정 받을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멋쟁이로 보이고 싶었던 그의 계획은 불행한 일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물건이 발자크의 지팡이였다. 아직 돈도 지불하지 않은 7백 프랑짜리 헤라클레스 곤봉을 들고 사교계에 나타났을 때 모두가 경악했다. 이후에도 발자크는 몇가지 쓰라린 체험을 한 후에서야 자신이 묘사와 형상화를 통한 세계에서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이 운명임을 알게 되었다. 주변인들에게는 절제를 모르는 낭비가였고 허풍선이였지만 작품을 통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자신만의 노동의 법칙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책, 만나는 사람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상과 사건들을 꿰뜷어 보는 눈길 만으로도 발자크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충분했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이 창조할 세상의 소재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다.
그는 펜이 말과 생각을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아주 빠르게 생각하고 쓸 수 있었다. 연상에서 다른 연상으로 마구 비약하는 그의 상상력은 음절을 헤아리고 격식에 맞게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발자크는 쓰고 또 썼다. 그가 하루 열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커피였다. 종이와 펜 다음 글쓰는 도구로 발자크는 커피를 선택한다. 훗날 이 도구가 스스로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한다. 지독하게 강한커피 5만잔이 그의 작품 『인간희극』을 지치지 않고 써 나가도록 격려해 준 셈이었다. 교정쇄 읽기, 이것은 발자크가 행위하는 결정적 창작의 수단이었고 도취된 상태로 써 내려간 몽상가의 습작을 관찰-평가-수정-변경 하는 과정을 거친다.
특별히 낭비가 심하고 너그러운 이 사람은 가장 내적인 과제, 자신의 일로 여겨지는 모든 일에 있어서만큼은 폭군적이고 꼼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정쇄들은 특별한 지시에 맞게 만들어져야 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렇게 수정된 교정본은 원래의 원고보다 더 이해가 안가고 읽을수도 없어 아무도 이 난해한 문자를 해독하려고 하지 않았다. 겨우 특별한 교정자가 이를 완성하고나서 다시 발자크에게 교정본을 보이면 또다시 텍스트에 달려들어 미친듯이 수정한다고하니 누가 발자크의 원고를 교정하려고 하겠는가. 이 또한 발자크가 비용을 물어가며 하는 일이라 그의 원고료나 인쇄는 교정하는데 반 이상이 날라가버렸다고 한다. 작가로서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한 발자크의 작품은 그렇기에 값질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것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고 고통을 잊게 해주는 노동이므로 그는 스스로를 옭아맨 쇠사슬을 벗어버리기가 힘이 들었다.

사람이 노동을 하는데는 목적이 따른다.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이거나... 발자크의 노동은 빚을 갚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이 노동을 사랑했고 이는 곧 힘든 노동을 하는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발자크의 글이 그 시대 여인들을 위로했고 용서하며 공감해주는 역할을 했고 그는 '높이와 깊이를 아는 사람'이 되어 수많은 여인들의 편지를 받아 이를 또 소설의 가능성과 연결시키기도 했다. 어린시절 부모의 그릇된 양육으로 온전하지 못한 삶을 살았고 평생을 여성 그 자체보다 그녀가 가진 재산이나 신분에만 관심을 가진 사랑의 기준으로 자신의 불행을 더욱 초래하며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현실의 삶과 자신의 소설속 삶의 모호한 경계에서 정돈되지 못한 삶을 살아온 발자크 ,그는 삶의 소설 속에서도 위대한 몽상가였고 확고한 현실주의자였다. 무의미한 지출과 현실감을 잃어버린 재정상식으로 낭비와 빈곤 사이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던 가련한 발자크의 삶, 강력하고 절대 지치지 않는 노동자, 철학자, 사상가, 시인이었던 발자크는 미완성의 삶을 살다가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며 소설같은 발자크의 평전 읽기를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