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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ㅣ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오하시 아유미 그림,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평점 :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키의 단행본 에세이를 만났다. 오하시 아유미라는 작가의 단순하고 위트 있는 일러스트가 하루키의 글과 어우러져 그 재미를 한껏 더해준다. 패션잡지에 연재된 50편의 글을 하루키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 음악, 음식, 고양이, 야구, 여행 등 별것 없는 평범한 일상들이 담겨있어 부담 없고 편안하게 어느 파트부터 펼쳐 읽어도 문제 될 게 없다.
일본에는 가키피라는 과자가 있는데 톡 쏘는 매운맛의 감 씨 모양의 과자 속에 통통한 땅콩이 들어있다고 한다. 하루키는 이 과자를 먹을 때 감 씨의 날카로운 공격을 땅콩이 받아서 날카롭게 되받아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조화롭고 균형이 맞다는 느낌이다.
세상에는 단것과 매운 것이 있어서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세계관을 새삼 확인한다.
가키피 문제, 뿌리가 깊다.
얼마 전 좀은 특별한 성격의 직장동료 때문에 살짝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이 대목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세상은 온순하고 배려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유난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는 자연의 섭리이고 균형임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런 자잘한 사건들에 나 자신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도 깨달았다. 상대방이 꼬장을 부리는 것은 내 속을 뒤집어 놓고 싶은 이유일 테고 그 목적에 내가 반응하면 묘한 쾌감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내 강인한 멘탈이 오히려 상대의 속을 뒤집히게 만드는 역공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하루키가 좋아하는 크로켓을 아내가 잘 만들어 주지 않아 본인이 대량으로 만들어 먹고싶을 때마다 튀겨 먹으려고 냉동 시켜두었는데 고장으로 다 녹아버린 에피소드가 있었다. 본인의 판단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을때 경험하게된다. 이후 그는 크로켓 대량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먹어서 귀찮아 그럴수도 있겠지만 꼭 먹고 싶을 때는 차라리 필요한만큼 사다 먹는 선택을 하고 있다니 바삭한 크로켓이 주는 행복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맛집이 있지만, 기분 좋은 화창한 가을날 오후,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런 거리낌없이 따끈따끈한 크로켓빵을 베어먹는 기쁨에 필적할 만한 것을 선사하는 곳이 또 있을까?
크로켓과의 밀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많은 문제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많다. 남들보다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끔은 우리를 흔들 때가 있다. 하루키는 별것 없는 일상의 가벼운 이야기들을 펼쳐내며 그 안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독자들이 소소하게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하루키의 말처럼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특별한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구절이 깊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