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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공격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평점 :

거장 에밀 졸라의 초역 단편집이 빛소굴 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예전 책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만났던 에밀 졸라의 『패주』는 읽으면서 살짝 지루한 느낌을 받아 이후에 작가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가 쓴 다른 작품을 이웃들의 리뷰를 읽으며 내가 선입견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에밀 졸라의 팬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 실린 다섯 작품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만날 법도 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드러나있다. 첫 번째 단편 『방앗간 공격』은 평화롭던 마을이 전쟁에 휘말리면서 시작된다. 자신과 결혼할 신랑을 구하기 위해 홀로 독단적인 결정을 해버리는 한 여인은 아버지와 신랑을 사이에 두고 깊은 고뇌에 빠져든다. 에밀 졸라의 실감 나는 상황적 묘사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박하고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딸의 선택이 불러오는 결말과 전쟁의 승리 앞에 희생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최우선으로 하는 장교의 '승리!'라고 외치는 위선이 상반되는 장면이었다.
두 번째 단편 『나이스 미쿨랭』은 딸 나이스와 아버지 미쿨랭의 이야기이다. 엄청난 부자 로스탕씨의 소작농인 미쿨랭은 여느 아버지와는 좀 다른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며 욕심이 많은 한마디로 못 땐 사람이다. 나이스는 해마다 농사지은 과일과 생선을 들고 로스탕씨 가족의 저택으로 찾아온다. 매년 성숙하고 아름다워지는 모습에 로스탕 부인은 감탄을 하고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로스탕가의 외아들 프레데리크는 나이스에게 이성적 감정을 품는다.
미쿨랭 영감은 얼굴이 검고 볼이 움푹 팬 거친 노인으로서 그 앞에서는 온 가족이 벌벌 떨었다. 어머니 미쿨랭 부인은 땡볕 아래서 고된 밭일을 하느라 머리가 아둔해진 키 큰 여자였다, 딸 나이스는 집에서 온갖 노역을 도맡아함에도 아버지의 강요로 기와 공장에서 일했다.
마치 우리나라 신파극처럼 울화가 치미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나 보다. 소작농의 딸과 부자 주인집 아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같은 사랑,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신에게 해밖에 되지 않는 아버지를 경멸하는 나이스는 마치 여전사와도 같다.
세 번째 단편 『올리비에 베카유의 죽음』은 죽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장례가 치뤄지고 무덤에 묻힌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한 사람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내가 죽고나면 남은 이들은 어떻게 살지는 헛된 고민임을 확인한다. 아무튼 생매장 당하다시피한 올리비에는 차가운 흙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나오려고 발버둥친다. 적막함과 공포스러움이 주는 상황적 묘사들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빠져들게 한다.
갑자기,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쳤고, 외칠 때마다 공포가 증폭되었기에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다.
『샤브르씨의 조개』는 돈은 많지만 슬하에 아이가 없는 샤브르씨가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린 아내와 함께 주치의의 권유로 공기 맑은 곳으로 가 조개류를 많이 먹으며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에밀 졸라 특유의 인간 군상 이야기기에 당연히 지질한 샤브르씨와는 정반대의 액토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청년은 금새 샤브르의 아내 에스텔의 미모에 빠져버리고 조금씩 에스텔과 가까이 지낸다.
조금 전에 에스텔의 바구니에 새우를 넣으면서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려고 애썼었다. 그러나 용기가 부족했던 그는 자기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샤브르씨가 익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처음으로 샤브르 씨가 방해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1년 후 샤브르씨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얻는다. 과연 그 아이는 샤브르의 친자일까? 수영을 못하는 샤브르씨가 분위기에 취해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젊은 아내를 시종일관 따라다니며 보이는 지질한 모습은 압권이다. 그 가운데 액토르와 에스텔이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에밀 졸라의 단편 수록작 모두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다. 권력의 부조리와 인간의 이기적 욕망, 반복적인 삶에 대한 권태로움과 변화를 꿈꾸는 희망 등은 시대를 불문하고 보여지는 인간의 삶의 모습이다. 현대적 판타지 소설에서 느끼는 몰입감과 흥미로움보다 사물의 영원한 본질인 인간의 삶에서 비롯되는 에밀 졸라의 창작력은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가 그려준 세대를 불문한 다양한 인간군상 속에서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내 모습도 발견하며 웃고 공감했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