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돈, 욕망을 풍자한 시대극-결혼 계약

결혼 계약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오노레 드 발자크만큼 소설 속에 다양한 캐릭터를 보유한 작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귀족과 부르주아의 삶, 그 귀족의 돈을 등치려는 사기꾼 등은 독자들의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제공하고 특히나 돈과 법에 밝았던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 주요 테마로 이 소재들을 자리 잡고 있다.

축복받고 행복해야 할 결혼 생활에 불순한 목적과 의도가 숨어있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법이다. 폴 드 마르네빌 백작, 그가 생각하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개념은 행복을 추구하고 미덕에 근거하는 지극히 소박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백작이 살던 시대의 결혼이란 이해관계 속에 얽힌 결합일 뿐이었다. 돈이 모든 삶의 가치척도였고 결혼은 금전적 사업과도 같았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저택을 보수하고 고가의 가구를 들여놓은 덕분에 마네르빌 백작은 고향 보르도에 도착하기도 전, 이름과 가진 재산만큼이나 우아하고 세련된 남자의 명성을 얻었다. '멋쟁이 신사'라는 명성은 신분에 걸맞게 교만한 태도를 가져야만 했고 외모 또한 출중했다. 에방젤리스타 집안의 나탈리는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르주아였으나 일찍이 작고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이미 남편의 재산을 모두 탕진한 상태였다.

한 가지 증거만으로도 그 사람을 신뢰하면서 그와의 우정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의심했더라도 금방 그 의심을 지워 버린다. 서풍이 구름을 몰고 온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북풍은 그 구름을 몰아내지 않나, 그들은 원인을 따져보기도 전에 결과만을 생각한다. 폴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악감정을 품을 줄도 모르고, 미래를 위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남을 잘 믿는 기질의 사람이었다.

나탈리 집안과의 혼사문제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의하라는 충고도 없지 않았지만 폴은 장모와 나탈리를 신뢰했고 자신의 집안 재산을 관리하던 오래된 충직한 공증인 마티아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결혼은 각자의 이권을 위해 싸워야 하는 전쟁이다. 사랑을 금전적으로 판단하고 신부가 지참금을 얼마나 가져오며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할 경우 재산 분배 등은 계약서에 철저히 기록되어야 한다. 소설의 주요 소재인 돈과 법은 발자크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소설이 된 것이다.

사랑은 엉터리 계산과 감추어진 속임수를 무시해버리고 합리적인 충고는 폴에게 거슬릴 뿐이다. 『결혼계약』 은 한 청년이 사랑에 눈이 멀어 서서히 파멸하는 몰락하는 귀족의 모습이다. 결국 이 소설은 권선징악이나 폴의 재산을 빼앗은 장모와 아내 나탈리를 비난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작 발자크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당시 결혼 지참금에 대한 불합리함을 폭로하며 여성의 재산권 문제도소설을 통해 제기한 것이었다.

발자크는 결혼이라는 제도 뒤 숨겨진 욕망과 속임수, 탐욕과 야심 등 결코 손해보려하지 않는 개인간의 문제들을 소송대리인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험을 소설로 드러낸다. 뒤에 수록된 금치산 역시 돈과 연관된 이야기이다. 프랑스 역사 속종교적 갈등이 선행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루이 14세의 낭트 칙령 폐지로 신교도들에게 몰수한 토지를 재산가들이 취득함으로써 부당하게 획득한 재산에 대한 도덕성을 이야기 한다.

발자크의 소설은 재미있다. 드라마로 만든다면 막장으로 꽤나 높은 시청률이 나올꺼라 예상된다. 책, 만나는 사람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상과 사건들을 꿰뜷어 보는 눈길 만으로도 발자크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충분했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이 창조할 세상의 소재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역사를 알게되고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를게 없는 탐욕스런 인간들의 모습을 읽게된다. 작가로서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한 발자크의 작품은 그렇기에 값질수 밖에 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