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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엄마 그리고 나
양정훈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3월
평점 :

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
양정훈 / 수오 서재
책을 읽으면서 잘 울지 않는다. 아무리 슬픈 내용이라도 그 장면의 묘사에 빠져들어 감정이입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은 내 성격 탓인가 보다. 그러나 이 고약한 책은 예외이다. 이렇게 섬세하고 깊이 파고들어 내면의 꽁꽁 묻어둔 감성까지 끄집어내 독자를 흔들고 폭풍처럼 오열하게 만든다. 더 놀란 것은 작가가 남자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픈 엄마를 이토록 정성껏 온 힘을 다해 보살피는 자식이 그리 흔할까... 아픈 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쌈닭이 되기도 하고 그 이유 역시 아픈 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아니겠는가.
작가는 월간지 회사 편집장으로 재직했고 이미 다섯 권의 책을 발표한 기성 작가이다. 그 이름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쓴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하나하나 버릴 것 없이 엄마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느 날 엄마의 배에 복수가 차 불러오기 시작했고 큰 병원을 찾았더니 자궁 가득 암이 차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8년 전 엄마는 이미 유방암 환자였고 완치까지 10년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약을 먹고 추적 검사를 받아왔다. 병원에서는 얼마 전 받은 종합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런 뭐 거지 같은 병원이 있냐며 언성을 높이고 소란을 떨어보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다른 듯 닮은 슬픔. 당신의 저림을 알 것도 같아서 우리는 함부로 위로하지 않았다. 서로에 반사되는 고통이 있었다.
page149
주변엔 아픈 사람이 참 많다. 저마다 친구가 혹은 가족들이 심각한 질병과 싸우고 있었다. 아픔과 아픔을 잇고 슬픔과 슬픔을 포갠다는 표현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 엄마의 투병은 길고 긴 시간이었고 그 곁을 아들이 지킨다. 항암치료와 반복되는 검사, 수술, 보호자도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팔순의 아버지에게 이 모든 것을 맡기기 어려워 아들은 기꺼이 짐을 진다. 어쩌면 엄마와 이토록 친밀할 수 있는지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사랑이 사랑인 이유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답고 눈부신 이유는 그리하지 아니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아프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아픈이들의 마음을 다 알겠는가, 아픈이들만 만나온 의사들은 그들의 고통을 다 아는체 하면서 대면대면 환자들을 대하기도 한다. 의사의 이러한 무심함들이 그들의 관심과 열정만 기대하는 환자들에게 때로는 무거운 상처를 안겨준다.
희귀암이 온 몸을 덮쳐 고통스럽게 엄마는 투병을 하고 그 곁을 지키는 아들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픈 엄마의 감정을 가져보기도 했고 희망과 무기력감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고 가는 자식의 마음도 경험해 본다. 엄마는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못했지만 아들은 엄마와 함께 한 시간들 속에서 이미 당부의 말을 들었다.
살라는 말이었다.
다시 사랑하고 다시 아프고 다시 헤어지고
또다시 사랑하라는 말 뿐이었다
page301
@ 읽은 후 감상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늦게 발견한다는 작가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장 늦은 이름으로 삶의 가장 깊은 곳을 배우고 우리는 또 다시 남아서 꿋꿋이 생을 살아간다. 살아계실때 좀 더 잘해드릴껄, 말 한마디라도 에쁘게 해드릴껄, 작가 역시 엄마에게 짜증내고 독하게 뿜어낸 말들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엄마의 투병을 그리고 임종을 글로 쓰면서 작가는 얼마나 마음이 혹독하게 아프고 힘들었을까, 3년이 다되도록 원고를 쓰고 지우며 병상의 엄마를 떠올리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고된 시간이었을 듯 하다. 처음 이 책을 쓴 목적이 병을 이긴 엄마에게 상을 내어 주고 싶었던 마음인데 결국 마지막은 엄마의 부재를 드러낸다.
병상의 엄마를 돌보며 마른 등을 쓸어내리고 켜켜이 쌓인 아픔을 달래며 쓴 글에서 일상의 단조로움이 곧 행복임을 읽는다. 현재 사랑하는 가족을 혹은 연인이나 친구를 돌보는 환자 가족들이나 그러한 아픔을 가졌던 독자들에게 폭풍같은 공감을 불러 일으킬 귀한 책 한 권을 만났다.
★수오서재 에서 협찬 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