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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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조경란 /작가정신

작가는 소설을 통해 가족을 그려내고자 노력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가족과는 먼 거리이다. 스무 살의 이경은 철저히 혼자다. 엄마가 죽은 후 외할아버지를 따라 목욕탕 집에 세 들어 사는 외갓집으로 왔다. 이모, 외삼촌, 이경과 할아버지까지 네 식구이지만 이경은 철저히 혼자다.



나의 새로운 가족들이다.

아니다. 차라리 가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이상한 동물원 이라고 말하는게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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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말을 할 때는 서로 뺨을 후려치며 싸울 때가 전부이다. 다락방을 포함한 한 칸짜리 방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어두운 방에 남겨진다. 아무리 세 들어 사는 집이라지만 열악하다.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고 허름한 외벽에 집 옆을 흐르는 샛강은 언저리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어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익숙한 풍경이다.


작가는 1997년에 이 소설을 썼다. 27년이 훌쩍 지난 지금 20대 후반이었던 그때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스무 살의 이경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열 살도 아니고 스무 살이다. 혼자 진로를 생각할 수도 있고 뭔가 취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나이이다. 그럼에도 그녀 이경은 단칸방에서 호박전을 부치고 벽돌 공장으로 출근하는 할아버지와 삼촌의 도시락을 싸며 이모가 벗어 둔 빨래를 한다. 맞은편에 세 든 남자의 방 열쇠를 살금 빼내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들여다 보기도 하고 은행에서 일하는 이모의 지갑에서 조금씩 돈을 빼내 모은 돈으로 밀린 남자의 방 월세를 한 달 치 지불하기도 한다.

이경의 불안함을 읽는다. 불안하고 막연하며 무엇이든 온전하게 자리를 잡아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섣불리 도전할 수 없고 무기력하다. 특별히 애정도 없고 애틋함도 느껴지지 않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흩트리려 하지 않는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금방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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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3층에는 안마시술소가 있다. 옥수수알 같은 작은 발톱을 가진 그녀는 안마시술소의 안내원이고 희한하게도 그녀는 매번 슈퍼에서 외삼촌의 이름으로 외상을 긋는다. 이모는 매번 그녀를 냉대하고 삼촌 역시 그녀가 집에 와 있는 걸 보면 화를 낸다. 이경은 그런 그녀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이경 역시 자신에게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러나 그녀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이모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며 사준 책은 생전 처음보는 언어들 처럼 생경하기만 하다. 혼자이고 싶지 않아 혼자 살 수도 있었겠지만 외할아버지를 따라나선 이경을 보게 된다.

새로 생겨난 이경의 가족은 가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이상한 동물원 같았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남이다. 아무리 떨궈 내고 싶어도 끝까지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것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이다. 할아버지의 벽돌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래를 시멘트보다 더 많이 섞어 만든 부실한 벽돌 같은 존재들이다. 꼭 이 가족들처럼...



읽은 후 감상



얇지만 무거운 소설이었다. 떠날 사람은 떠난다. 남겨진 사람들은 또 다른 움직임 속에 채워지고 가족을 이룬다. 이모처럼 집을 떠나 버린다면 가족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이경은 떠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움직임들 속에서 변화는 또 다른 가족을 만들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게된다. 괴팍한 사람도 순한 사람과 피를 섞게되면 희석되듯 가족은 그렇게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피를 섞고 재탄생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고마운 빛을 찾듯 말이다.




작가정신에서 지원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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