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독보적인 자리를 확고히 한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작가 생존 시에는 문학적 가치를 얻지 못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작품 속에 표현된 다양한 상징들이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작가정신의 출간 13주년 개역판이라 그런지 동화책을 읽듯 한 편의 영화처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책 훑어 보기
가진 돈은 바닥나고 딱히 육지에서는 흥미를 끄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이슈메일은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하여 거대 고래 모비딕을 잡는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피쿼드 호의 선장인 에이 헤브는 과거 모비딕과의 한 판 승부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모비딕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
피쿼드호에 탑승한 선원 개개인의 개성 있는 이야기는 포경 선원들이 단순히 고래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경험들과 갈등을 드러내주어 더욱 독자들을 흥미롭게 이끈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나약하게 부서져 버리는 인간의 한계와 무력함을 드러낸다.
*독서 후 감상
이 세상은 스스로에게도 설명되지 않는 납득하기 힘든 문제들이 존재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호함이 존재하는가 하면 같은 목적을 이루고자 하나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며 경쟁하며 다투는 사회이기도 하다. 삶의 고통을 바라보는 모습은 선장 에이 헤브와 성경 속 욥의 모습에서 공통됨을 보았다. 흰 고래에게 다리가 잘린 후 40년을 거대한 고래에 대한 복수심으로 사는 모습, 자신의 떳떳함을 내세우며 하느님께 저항하는 욥의 모습에서 말이다.
소설 속 유일한 생존자인 이슈메일은 거대 고래 모비딕을 고통의 근원이며 죽여야 할 존재임을 부정한다. 이슈메일에게 모비딕은 성경 속 욥에게 깨달음을 얻게 해 준 피조물이기도 하다. 내가 왜 이 부분에 꽂혔는지 모르겠지만 에이 헤브 선장과 이슈메일의 상반된 이미지와 삶의 철학을 찾는데 주력하며 읽고 있었다.
에이 헤브 선장은 자신의 삶을 고통 속에서 마감하더라도 기필코 모비딕과의 한 판 승부를 운명으로 예견하는 반면 이슈메일에게 운명론은 문제 될게 없었다. 오직 모비딕이라는 신비로운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의 방랑벽을 인정하며 나른함에서 벗어나고자 피쿼드호에 올라타며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만들어 나간다.
이슈메일은 개인의 운명은 자유의지에 의해 우연스러운 움직임과 다양한 모습으로 변경되어가며 그 모습은 밝기도 하고 어두울 때도 있으며 인간이라면 삶의 이 모든 경우를 포용할 줄 알고 집착하지 않으며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작가인 허먼 멜빌의 철학적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유익함을 전해준다.
퀴케그와 이슈메일의 우정, 이성적이고 신중하며 모비딕과의 충돌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에이 헤브 선장과 스타벅의 갈등, 자연의 힘과 그 상징성을 그대로 드러낸 향유고래 모비딕은 인간이 가지는 힘의 한계와 인간 역시 자연 속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임을 알게 해준 책이다.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