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슈 파랑
기 드 모파상 지음, 송설아 옮김 / 허밍프레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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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파랑

기 드 모파상 / 허밍 프레스

기 드 모파상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로 그의 작품 『여자의 일생』『목걸이』 등은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남아있다. 무슈 파랑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4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이다. 모파상은 기질이 병약했고 정신분열증을 앓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을 때 말하는 화자가 어떤 방식으로 사건에 대해 태도나 입장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독자들이 더 집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 무슈 파랑에 실린 총 4편의 단편 사랑, 위송부인의 장미 청년, 테오듈 사보의 고해성사, 무슈 파랑은 화자의 서술 방식이 확연히 높이 드러나 독자로서 작품에 빠져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랑』은 원시적인 인간 본능과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문명인으로서 이성과 감성으로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화자인 '나'에 의해 서술된다. 사촌 칼의 집에 들러 함께 오리사냥을 나간 '나'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암컷 상오리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던 수컷도 결국 총에 맞아 죽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애통한 부르짖음에 마음이 찢기는 고통을 말하면서도 그는 별 마무리 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버린다.



『위송부인의 장미 청년』은 인간이 가지는 감춰진 욕망이 충족되자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한 욕망을 가지지만 얼마나 절제를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스스로의 삶이 달라진다. 모범적인 청년 이시도르는 마을에서 가장 순수한 청년이었으나 상으로 수여받은 상금으로 감추어 두었던 욕구를 실현하며 급속히 타락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순결을 강요하고 그런 대상을 찾아 모범적이라며 상을 주고 상금을 부여하는 시대적 발상이 웃프기도 했다.


이시도르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먹고 마셔보지 못한 사람처럼 마음껏 들이켰다네! 그는 혀를 즐겁게 하는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면서 음식을 먹고 또 먹었지.

page41_위송 부인의 장미 청년


이시도르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격렬한 대결, 사탄의 거센 공격과 계략, 소심하고 순결한 마음에 던지는 수많은 유혹을 결국 이시도르는 이겨내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결국 술로 망친 인생을 '장미 청년'이라고 일컬어 부르는 일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테오돌 사보의 고해성사』는 자신이 생각하는 윤리적 가치와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스스로 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웃픈 이야기였다. 마을의 주임신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테오돌 사보는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보수 문제로 쉽게 놓치고 싶지 않은 공사를 따내기 위해 테오돌 사보는 신부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다. 이 작품은 상당히 풍자적이라 인간 심리의 변화를 조화롭게 글로 드러내주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무슈 파랑』은 마치 한 편의 로맨스 치정 극 같은 흔히 말하는 주말드라마 같은 느낌이었다. 파랑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았던 잔소리 대마왕 가정부 줄리가 부도덕한 아내 앙리에트의 불륜 사실을 파랑에게 모두 까발리며 갈등 상황이 시작된다. 줄리가 드러낸 부분은 아내의 부정에 한 겹 더 얹힌 아들 조르주의 아빠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파랑은 고통받는다. 읽는 독자들의 마음속에도 파랑 때문에 천 불이 난다.


당신이 "선의'라고 일컫는 그의 어리석음이, 당신이 '신뢰' 라도 일컫는 그의 갑갑함이 매 순간 신경을 건드리고, 무엇보다 그가, 당신이 아닌 그가 나의 남편이라서 증오하는 거라고요!

page 105_무슈 파랑


잘못을 저지른 부도덕한 아내는 아주 당당히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노심초사 파랑은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며 숨어서 훌쩍 자란 아들 조르주를 지켜보기도 한다. 과거 자신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은 사라져 버리고 어엿한 청년이 되어 그토록 사랑을 준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어깨를 스친 이상한 남자를 바라본다.


아이의 불쾌한 눈빛에 찔려 상처를 입은 파랑, 과거로 사라져 버린 사랑스러운 아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파랑은 남은 자신의 삶을 더욱 마모시키고, 위축시키고 고갈시킨다. 이십 년의 세월을 카페에 앉아 자신의 인생을 죽이며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자신의 삶이 참담하기까지 하다. 결국 모든 고통은 증오로 변한다. 자신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섬뜩한 생각에 잠긴다.



무슈 파랑의 결말은 없다 그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바라는 모파상의 뜻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인간 군상 속에서 더한 일들도 많이 본다. 파랑의 고지식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어쩌면 자신에게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죄에 대한 벌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릴 것이라는 운명론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모파상의 사실주의적 소설은 100년도 훌쩍 전에 쓰였으나 현시대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을 읽는다. 그때의 사람들도 현재의 사람들도 복잡다난한 삶 속에서 서로에게 죄를 짓고 아프게 하고 때로는 용서하고 산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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