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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페스트
알베르 까뮈/ 문학동네
소설 페스트의 발표 시기가 1947년임에도 불구하고 카뮈가 설정해 둔 페스트 속 세상은 팬데믹 속 철저하게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극명하게 제시해 준 미래에 대한 예언서와 같았다. 인류가 맞닥뜨리는 재앙 앞에서 소설 속 세상이 현재 인간들이 처해진 환경의 유사성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어떤 이상을 추구하며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 해법까지 제시해 주어 고전의 우수성을 고스란히 확인한 작품이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코로나 시대는 인류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던져주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과제를 던져주었다. 2020년 인류가 당면한 과제는 코로나 속에서도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성실함, 그러니까 페스트 속 알베르 카뮈가 주장한 그 인간 기본의 성실함이 소설 속 상황과 겹치는 현재에서 해법으로 먹혀들어가는지가 주목할 점이기도 했다.
페스트와 코로나는 유사한 점이 참 많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대구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가 발생해 그 즈음 대구 사람들이 많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한참 직업과 관련된 교육을 서울에서 받고 있었던 나와 동료는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강의장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욱! 하고 열받는 일이었지만 몰랐으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학원이 준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페스트처럼 코로나는 그렇게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했고 가짜 뉴스가 말도 못 하게 sns를 통해 요란하게 돌아다녔으며 도시 봉쇄의 처방도 운운했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나 국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 치안이나 물자 부족, 개인주의 이외에도 맞서 대응하는 사람들 등 유사한 점을 다수 소설에서 보여주었다.

페스트의 첫 시작은 죽은 쥐의 사체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건물을 지키는 한 이곳에서 쥐가 나올 리 없다는 당당한 경비의 반응과 이후 경비가 죽은 쥐를 만져 감염되고 그 또한 죽음에 이르는 가속성이 소설에 몰입감을 주기도 했다. 한두 마리에서 시작된 쥐의 사체는 이후 전 도시에서 하루 8천 마리 이상을 수거해야 할 만큼 요란하게 쥐도 사람도 병에 전염되고 있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페스트로 인해 시민들이 혼란이 가중되었고 함구하던 시의 책임자가 결국 오랑시에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발생했음을 선언한다. 오랑시는 항구이기에 금방 폐쇄되고 도시가 봉쇄되었으며 주민들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나날이 고통스러워했다. 갈수록 감염자가 늘고 피해자가 급증하자 보다 못한 시민들이 자원 보건대를 조직해 연대의식을 형성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트는 날이 갈수록 더 기승을 부렸고 이로 인한 피로감에 시민들은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 책의 결론은 코로나 상황과 같다. 결국 페스트 역시 코로나처럼 끝은 있었고 미세하게나마 희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삶의 기본 조건으로 지향하는 '성실함'을 모토로 살아가는 '리외', 그는 바로 알베르 카뮈가 생각하는 올바른 삶의 표본이었다, 페스트가 가지고 온 인간사의 부조리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꿋꿋이 정해진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해내는 사람, 그가 가진 성실함에 사람들이 전하는 신뢰와 공감이 꾸준히 쌓인다면 희망은 절대 인류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남겨 주기도 했다. 페스트를 읽으면서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각자만이 가지는 어떠한 신념으로 재앙에 맞서고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읽어 보고자 했다.
그랑은 작가 알베르 카뮈를 대변하는 인물로 보였다. 조제프 그랑은 승진을 시켜준다는 말 한마디에 희망을 갖고 오랜 기간 시청에서 잡일을 하며 희망을 놓지 않은 하급 공무원으로 나온다. 가난과 결혼생활에 지친 아내는 오래전 그를 떠났고 그리움에 그가 찾아낸 취미는 적절한 단어 찾기이다.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게 그랑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랑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성실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타루는 어수선한 도시에 자원 보건대를 조직해 페스트에 걸린 환자나 그 가족들이 신속하게 격리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타루는 이 활동을 통해 타인의 감정에 깊게 공감하고 시민들이 재난상황에서 서로 연대해야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주장하고 이끌어 가기도 한다. 검사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자신은 혁명가의 삶을 살아가며 혼잡한 도시의 다양한 문제들을 통찰력 있게 내다보고 이끌어 나가는 모습에서 든든하기도 했다.
랑베르는 우리와 같은 가장 시민적인 인물이었다. 이동 제한으로 헤어지게 된 가족과 연인을 그리워하며 행복과 페스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인물, 실제 알베르 카뮈의 모습이기도 했다. 연인을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랑베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기보다 자원 보건대의 희생적인 활동을 지켜보며 시민들을 위해 위기를 극복하는데 한 힘을 보태려고 결심하는 의로운 인물이기도 했다.
페스트 속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리외. 그랑, 랑베르, 타루 등 각자가 페스트라는 재앙에 대항한 소신 있는 행동을 보여주었고 이들의 행동이 하나의 서사를 이루어 낸 것이다. 페스트라는 인류의 재앙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포기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여 맞서 싸워 낸 것이다. 불행에 맞닥뜨렸을 때 드러나는 극명한 인간의 대응, 페스트가 인생이라고 말하는 카뮈의 명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