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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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문학동네

체코의 국민작가인 보후밀 흐라발, 솔직히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그는 조금 생소한 작가였다. 온갖 직업을 전전했던 그는 마흔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정부의 지나친 감시와 검열 속에서도 그는 다른 작가처럼 조국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남아 수많은 규제와 박해 속에서도 자신만의 글을 썼다.






프라하의 밑바닥, 지하공간에서 35년간 폐지를 압축해 온 '한타'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어두운 지하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폐지를 압축하는 일, 그는 이곳에서 칸트, 헤겔, 카뮈, 사르트르, 쇼펜하우어, 예수와 장자를 만나 자신이 예견치 못했던 교양과 지식을 쌓아 나간다. 가끔은 폐지 더미 속에서 그의 눈을 뻔쩍 뜨이게 하는 귀한 책이 빛을 발하며 나올 때가 있다. 도살장의 고기를 포장했던 피 묻은 종이 사이로 달려든 파리떼와 지하실에서 그와 함께 동고동락한 쥐의 가족들도 가끔 폐지 더미와 더불어 피를 토하며 압축되기도 한다.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 마신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page 14



책을 사랑하는 그는 이곳에서 얻은 귀한 책들을 집으로 가져가 구석구석 탑을 쌓아두고 보관한다. 더 이상 책을 쌓을수가 없게되자 선반을 만들어 침대 위로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쥐들이 책을 조금씩 갉아먹어 균형이 무너진다면 결국 그는 책에 깔려 최후를 맞이 할 것이다. 매일 밤 그는 책더미에 깔려 죽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한때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만차'라는 이름의 그녀는 그와 만날 때 마다 웃기게도 똥과 더불어 소소한 에피소드를 일으킨다. 참으로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일어난 일들이라 웃프기까지 했다. 이 에피소드는 꼭 직접 읽었으면 한다. 만차는 사랑과 의지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된다. 만차의 삶은 그녀의 집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고 책을 혐오한 그녀는 스스로 상상도 하지 않은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토록 책에 둘러 싸여 책에게 쉴새없이 구애하며 갈구했던 '한탸'는 단 한줄의 메세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책이 '한탸'에게 맞설 뿐이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안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삶이 영원할줄 알았던 그는 돈키호테처럼 또다른 기회를 찾기보다 고독속으로 자신을 더욱 밀어 넣는다. 결국 산업화에 밀려 35년간을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처럼 책을 발견하는 기쁨마저 잃어버린채 한타역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인간으로서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과 실존의 괴리가 그를 뒤흔들어 놓는다. 전쟁과 폭력, 발전해 나가는 산업화에 따른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폭로하고 현대적 시설에 밀려나는 노동의 상황도 보여준다. AI에 밀려 사라지는 직업과 실직에 힘들어 하는 현재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그의 감정상태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혼자 폐지를 압축하며 일하고 있지만 그의 머리 속은 복잡하다. 절망적이고 시끄러우며 고독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실존적인 해방을 꿈꾸고 있다.


짧은 그의 단편에서 반복되는 문장, 삼십오년간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했다는 것과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표현이다. 왠지 작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짧은 소설 속에서 많은 생각을 부여하는 보후밀 흐라발의 단편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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