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폭탄

오승호(고 가쓰히로) / 블루홀6



블루홀 식스의 미스터리 걸작들은 책을 읽으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준다. 이 책의 작가인 오승호는 제일교포 3세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추리소설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 폭탄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초침소리가 들리며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긴장과 긴박감으로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을 쥐고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스즈키 다고사쿠는 평범한 듯 특별한 캐릭터이다. 한마디로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빌런 이기도 하다. 뭔가 잽싸고 날렵하며 예리하고 명석할 듯한 미스터리의 빌런 역을 확 깨트리고 밤톨 같은 더부룩한 머리에 퉁퉁한 몸, 축 늘어진 볼과 술배가 툭 튀어나온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단어에 대해 살짝 지식이 필요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급부상한 신조어 중 무적의 사람(無敵の人) 즉 돌봐줄 가족이나 친척, 친구도 한 명 없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부각된다고 한다. 그들이 저지르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고 자신들은 어떻게 되든 잃을게 없다는 될대로 되라는 마인드를 가진 세상 겁날게 없는 사람들을 뜻한다.



스포 없는 줄거리


이 특별할 것도 없는 어수룩한 스즈키가 술에 취해 주류 판매점 자판기를 발로 차고 이를 말리는 직원을 폭행해 현장에서 체포 당한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난데없이 폭발을 예언하고 경찰은 당연히 술주정뱅이의 허언 정도로 이 문제를 치부하고 만다. 실제로 폭발이 스즈키의 예언대로 일어나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스즈키는 외모와는 다르게 마치 자신이 게임의 진행자라도 된듯 사람들의 심리를 조정하며 행동한다. 의외로 그에게는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 둔 양식에 슬쩍 올라타 그럴싸한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었다. 스즈키와 맞서는 도도로키, 기요미야, 루이케, 쓰루코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절대악과 싸우며 자신을 희생해 끝까지 물리치는 기존의 선과 정의의 캐릭터는 아니라는 말이다. 스즈키를 심문하는 경찰들은 끊임없이 그의 논리에 흔들리고 농락 당하며 선악의 경계에서 마구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앞으로 일어날 총 3회의 폭발을 예언하며 폭탄에 대한 힌트와 퀴즈를 제시해 경찰서 조사관들을 은근 자신이 만든 테두리 속 게임으로 끌어들인다. 과연 이 예언된 폭발을 막을 수 있을까?




나의 독후감상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 그런 인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쓰레기, 늘 피해자 행세를 하는 추남 추녀, 물과 평화와 기초 생계 급여는 공짜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거드름을 피우는 비평가, 냉소주의자, 케이크 사진을 일일이 찍어 대는 한가한 인간, 사치스러운 교주와 그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데 여념이 없는 신자들, 환경 운동가, 채식주의자, 억지 가사밖에 쓸 줄 모르는 래퍼, 영화나 소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나르시시스트, 제 자식밖에 모르는 팔불출 부모, 그런 부모가 다 해 줄 거라고 믿는 마마보이, 마마걸, 인간보다 개,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녀석들. 그들 모두를 평등하게 죽일 것입니다. 저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p372)



스즈키 다고사쿠가 입으로 꺼내는 문장이 독자가 읽어도 왠지 진실처럼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나 비정상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소설 속 경찰관들과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가치관을 마구 잡고 흔든다. 마치 자신이 정의로운 척 그럴싸한 이치로 현혹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표면만 흝는 해석, 왠지 모르게 기발한 듯한 설명, 안전한 논리의 미니어처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며 경찰들을 싸잡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자기비하 발언으로 낮은 자존감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심 받고 싶어한다. 작은 체구에서 온 몸의 털이 주뼛 설 정도의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며 당장 죽이고 싶을 정도로 경찰들의 이성을 잃게도 한다.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인 경찰들 안에도 스즈키와 비슷한 파괴의 충동과 욕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제한된 시간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스즈키의 대사를 읽다보면 이 인간 천재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인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시대적 군상들을 스즈키는 슬그머니 악용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가 만들어 둔 괴물같은 인간상인 스즈키 다고사쿠를 통해 절대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작가 오승호의 폭탄은 재미와 더불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