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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ㅣ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우리 슬픔의 거울
피에르 르메트르 / 열린 책들
55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한 피에르 르메트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랑스 문학의 거목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 문학의 특징이 그 나라에서나 통하는 유머나 위트 그리고 다양하게 난해한 부분들이 있어 즐겨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의 편견을 조금은 사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일단 이 책은 가독력이 아주 좋다. 소설책 두께로는 수준이 벽돌 책이긴 해도 전혀 거리낄 필요가 없다.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을 앞둔 시기이고 첫 번째로 초등 교사를 하며 카페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는 루이즈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소설에서 그녀는 무척 마르고 갸름하고 오뚝한 코, 반짝이는 푸른 눈, 예쁜 입술을 가진 과묵한 여성이라고 소개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자신의 미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루이즈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아기가 없으면 결혼도 할 수 없다는 특이한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20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는 단골손님이 엉뚱한 제안을 한다. 제안을 허락하면서 루이즈는 빠져 나오기 힘든 굴레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그동안 묻혀 있던 비밀과 오해가 하나씩 풀려가며 조금씩 루이즈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전쟁터에서 만난 병사 바른 생활 사나이 가브리엘과 항상 불순한 파동을 일으키며 온갖 술책과 부정 거래를 일삼는 라울 랑드라드 병장이다 . 둘은 정반대의 성격이나 이후 필연적인 이끌림의 운명으로 이어진다. 독일군의 공격으로 최전선에서 무너진 둘은 본의 아니게 함께 동행하는 탈영병이 된다. 또 다른 페르낭이라는 인물은 아픈 아내를 혼자 피난가게 하고 자신은 남아 독일의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세 번째는 시민들에게 진실을 보도해야 할 공보국에서 일하는 데지레의 시점이다. 그는 전쟁의 실제의 상황과 영 다른 상황을 시민들에게 보도하며 가짜 뉴스를 남발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었고 수줍음과 매력과 견고함이 뒤섞인 이 소탈한 청년을 사랑했다. 자신의 신분까지 세탁하며 살아가다가 점점 들통나기 시작하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후 새로운 캐릭터인 신부의 모습으로 성당에서 살아가는 사기꾼 데지레의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날이 갈수록 그가 연기하는 신부는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성장해 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보다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고통 받는 피란민들을 도왔으며 그 덕분에 더욱 의미 있는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을 무대로 한 이 이야기는 결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는 운명 같은 부분이 존재했다. 각자의 환경과 방식에 따라 피란민이 된 그들은 데지레의 성당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서로 알지 못하는 그들은 알고 보면 어떤 인연의 사슬로 엮여져 있다. 전쟁 속에서도 다양한 인간들의 삶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일어나고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헤쳐 나가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현실과 다름없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내용들을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아주 흥미롭게 진행 시킨 소설이었다.
이 책은 1차 대전부터 시작된 시리즈로 세 번째 책이었고 이후 2차 대전 이후의 역사를 그리는 새로운 소설 큰 세상이 이미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원 제목은 우리 고통 들의 거울 이라는데 고통은 전쟁과 별개로 그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비루하고 고된 피란 길의 광경이나 일상의 삶이 우리가 갖는 고통이었고 결국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모든 고통도 다 지나간다는 한줄기 희망이 전해져 오래 기억에 남을 책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