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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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슈테판 츠바이크 / 문학동네


왕을 뜻하는 체스의 어원은 '왕가의 게임'을 뜻한다고 한다. 가로, 세로 8칸의 격자판으로 총 64칸의 격자판 위에 16개의 말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상대방의 킹을 잡으면 게임을 이기는 룰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체스라는 게임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체스판 위에서 일어나는 경우의 수는 우주의 별에 비교될 만큼 헤아릴수 없다고 한다. 상대방이 두게 될 다음의 수를 미리 예측해보고 현재 자신의 수에 맞게 체스를 둔다는 것은 지금 나의 수가 상대방의 수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법칙이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평전을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낯익은 이 이름은 얼마 전 읽었던 발자크 평전을 썼던 독일 작가였다. 1881년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김나지움 출신으로 이후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프랑스와 독일문학을 전공한 탄탄한 작가이기도 하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영국으로 피신해 생활했고 이후 브라질로 망명해 생활해 왔다고 한다.


인간 내면의 심리, 감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 섬세한 심리적 변화, 그리고 장면적 묘사에 충실하게 표현되어 있는 체스 이야기를 읽으며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가 프로이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평전을 쓰기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인간심리와 묘사가 프로이드적인 표현이 내제되어 있음을 읽기 때문이다.



체스 이야기는 폐쇄적인 구조가 보여진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라는 공간,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와 B박사의 승부, 첸토비치의 삶과 B박사의 삶이 체스판 위에 놓여지는 대립적인 구도이다. 가난한 뱃사공의 아들로 태어나 지독히도 학습능력이 떨어져 정규교육을 포기하다시피한 첸토비치가 오직 체스라는 한 분야에서만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는 서두로 시작된다. 순식간에 첸토비치는 작은 마을의 체스 챔피언이 되고, 금새 세계 챔피언으로 발돋움한다.


체스를 통해 자신만의 유일무이한 세계에서 신중한 판단으로 체스를 두며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고 성공을 얻어내는 첸토비치,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위해 가급적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무식함이 탄로날까봐 본인이 생각하기에 교양을 갖춘 사람이면 더욱 철저히 함구한다. 부족한 암기력과 상상력을 들키지 않기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느리게 체스를 두다보니 함께두는 상대방은 지칠만도 하다. 첸토비치의 이러한 치밀함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싫어하는 히틀러의 편집증적인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반면 배에서 갑자기 첸토비치와의 체스경기에 참여하는 B박사의 경우 첸토비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는 빠르고 정확하며 신속하게 계산해 체스를 두며 주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출신성분도 첸토비치와는 반대로 명문가의 아들이고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유복한 집안의 신사로 표현된다. B박사의 아버지가 옛궁정과 수도원의 재정을 비밀리에 운영하는 법률사무소를 했고 히틀러의 지시로 나치 친위대에 붙잡혀 호텔에 감금된 채 황실기밀에 대한 심문을 받는다. 심문은 불시에 이루어지며 아주 교활한 방식의 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진다.



진짜 질문들과 가짜 질문들, 명확한 질문들과 악의적인 질문들, 위장된 질문들과 유도질문들을 던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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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박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호텔을 무의 공간을 만들어두고 어느 하나 볼 것, 만질 것, 쓸 것 조차 두지 않고 작은 소리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린 나치의 잔혹함도 보여진다.


침묵의 검은 바닷속, 유리종 아래 있는 잠수부처럼 살았습니다. 바깥세상으로 연결된 밧줄이 잘려 다시는 이 소리 없는 심연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거라고 이미 예감한 잠수부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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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심문 중에 B박사가 슬쩍 훔쳐 얻어낸 것은 체스마스터의 대국 묘수를 정리해 둔 교본이었고 그 작은 책 속에서 무궁무진한 우주를 찾게 된다. 그동안의 정신적인 갈증을 해갈시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모습에서 무너진 정신을 지탱하며 살아남기 위한 독한 의지를 읽을수 있었다. 나치즘에 대항하는 이는 스스로 나치를 닮아간다고 하니 B박사의 모습 한켠에서 나치의 모습을 읽기도 한다.

항상 상상속의 게임을 즐기던 B박사와 체스 챔피언인 첸토비치의 대결!

첸토비치는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는 아주 야비하게 B박사의 심리를 읽어낸다. 체스를 알지 못하는 나도 이 둘의 경기를 읽으며 긴장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이다.

체스이야기는 츠바이크가 생각하는 모든 가치관이 담겨져 있는듯 하다. 긴장감 있는 인물간의 대결구도와 혼란의 시대에서 츠바이크가 지켜나가야 한다는 휴머니즘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제시해 둔다.

낯선 여인의 편지에서는 열세살부터 평생을 한 남자만 사랑해 온 여자의 고백글이 담겨있다. 섬세한 심리묘사, 츠바이크의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탁월함이다. 현재의 시대와는 맞지 않는 지고지순한 여성의 사랑 방식이 비판적으로 보여지기는 하나 그 시대의 배경에 관점을 두고 볼 일 이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한 여자가 보내는 순정 가득 담긴 편지를 읽으며 한 남자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는애틋한 이야기, 천재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하나하나 곱씹어 찾아 읽어야겠음을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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