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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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언어의 마술사인 크리스티앙 보뱅이 쓴 「흰옷을 입은 여인」은 55년 짧은 생을 살다가 간 에밀리 디킨슨을 추앙하는 애정 가득한 전기문이다. 천재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사반세기라니 25년 넘게 자신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글을 써왔다. 많은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는 대부분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묻어두고 조용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에밀리 디킨슨을 직접 만난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을 애정하였기에 에밀리의 글을 보뱅 자신만의 언어로 재완성하고 있다. 에밀리 디킨스가 살아온 삶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해 직접 그녀의 삶을 관찰하듯 영상처럼 장면 하나하나를 보여준다. 에밀리의 장례식장, 그녀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그날의 날씨와 장식된 꽃 하나, 에밀리의 관을 짊어진 사람들과 그들이 걸어가는 모습까지도 마치 독자들이 생생하게 그 장면을 지켜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묘사해 두었다.


쉰다섯 살, 우린 최대한 얼굴을 숨긴다. 어머니의 시선을 받을 수 없는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만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다 죽음을 맞는다. 뒤이어 처음 온 아이가, 꿀벌이 윙윙대는 풀밭 위를 항해하는 우리의 관을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page13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흔적은 보뱅이 그녀를 알기위해 수집한 글과 실제사건에서 보뱅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 삶의 일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받고 아름다운 장면들로 재탄생해 완성된다. 에밀리 디킨슨의 왜 그토록 세상을 병적으로 회피하며 은둔생활을 하였을까? 하루하루의 삶을 아름다운 그녀만의 언어로 만들어 두고도 발표하지 않고 숨겨둔 채 조용히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보뱅을 통해 하나하나 퍼즐이 맞춰져 나간다.


숨겨진 천재작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순수한 관심과 염려 가득한 보뱅의 공감능력이 한 시인의 삶을 시간 속에서 끄집어 내 독자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이다. 보뱅은 한마디로 에밀리 디킨스는 '성녀'라고 표현한다. 그녀가 살아온 일상의 존재함을 가르쳐 주며 성녀의 삶을 에피소드로 만들어 낸다. 사이사이 여백에는 보뱅이 전하는 감상이 깃들여져 있고 독자들은 에밀리 디킨슨의 삶 속으로 초대되어 그녀의 삶을 바라본다. 그녀는 끊임없이 가족을 염려하고 애정을 드러낸다. 오빠를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삶의 짐을 덜어주며, 삶의 심연에서 헤매는 어머니를 돌보고, 자매들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쓰며 마음의 양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에밀리 디킨슨이 은둔하게 된 이유중 하나를 그녀가 겪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의해 우울증을 앓고 신장에 병이 생겨났음을 말한다. 에밀리 스스로 자신 안에서 천국을 몰아내 버린 것이다. 소멸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그녀는 스스로를 망각 속에 묻어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썼다.


천재 작가 보뱅이 자신보다 한 세기를 앞서 살다간 미국 여성 시인의 삶과 예술을 그린 흰옷을 입은 여인은 보뱅이 초대한 에밀리 디킨슨의 삶 속으로 독자들이 초대되어 책을 읽었다는 생각보다 클래식한 한편의 영상을 감상한 기분이 든 짧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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