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동품 상점 (양장)
찰스 디킨스 지음, 이창호 옮김 / B612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된 골동품 상점

찰스 디킨스 지음 / B612북스


19세기 영국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을 작품에 잘 드러낸 찰스 디킨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이다. 이 작품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서 디킨스는 당시의 사회 모습을 실감 나는 묘사로 보여주었고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실체를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상향의 사회를 꿈꾸는 것은 당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염원이었고 그들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찾고 되새기게 하였다. 산업사회의 포악성과 부정적인 모습들을 상세하게 드러내 주어 착한 소녀 넬이 꿈꾸는 유토피아와 현실에서의 괴리감이 드러나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어른들의 동화였다.



착한 소녀 넬은 외할아버지와 함께 오래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작품에서는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개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천사 같은 소녀 넬과 추악한 모습만큼 성품도 추악한 난쟁이 퀼프이다. 넬의 보호자인 할아버지는 넬의 미래 행복을 위한다는 구실로 고리대금업자 퀼프에게 끊임없이 돈을 빌린다. 그 돈이 어디에 쓰여지는지 할아버지의 너무나 모순된 행위에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늦은 저녁 퀼프의 집으로 심부름을 다녀오다 길을 잃은 소녀 넬을 노신사인 화자(작가)가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는 퀼프를 작은 창조주로 표현한다. 퀼프는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키작은 난쟁이지만 머리와 얼굴은 거인처럼 크고 음흉하고 교활하며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돈에 팔려온 듯한 온순한 아내를 자신의 종부리듯 다루며 끊임없이 자신의 발 아래 두고 괴롭히고 지배하려는 아주 지독한 인간이기도 하다. 퀼프가 넬의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어린 소녀를 자신의 아내가 잘못된다면 바로 후처로 들일 응큼한 속셈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사랑하는 손녀딸 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부자가 되어야 했다. 노인의 허황된 꿈은 자신이 언젠가는 이길 것이라는 헛된 곧 자본주의의 망상과도 같다는 생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도박에서 돈을 따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잃는 사람은 가난해진다.이는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구조와도 상응하고 있다. 결국 모든 돈을 잃은 노인은 골동품 상점을 퀼프에게 빼앗기고도 남은 돈을 갚지 못해 넬과 함께 부정적인 메세지만 주는 도시를 떠나 그를 피해 멀리 도망가는 중이다. 당시 영국의 성인소설에서 넬처럼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고 신문에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넬의 염원은 퀼프를 피해 아무도 모르는 한적한 곳에서 자유와 평화를 영위하며 할아버지와 함게 조용히 숨어 살아가는 소박한 것이었다. 평화로운 자연이 할아버지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도 했다.


19세기 초 산업사회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디킨스의 글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고난과 삶의 고통 속에서 탈출해 미지의 어떤 유토피아를 향하는 넬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다. 찰스 디킨즈는 넬을 통해 꾸밈없는 순수함을 보여주고자 노력했고 넬의 모습이 곧 근대사회의 발달 속 어른들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순수함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선원들이 어린 넬에게 밤새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어린아이에게 적합하지 못한 부당한 행위들은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이나 아이들이 매우 힘없는 존재였고 그들이 경험했던 고통을 소설에서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도시의 부정적 이미지에 지쳐 시골로 떠나는 할아버지와 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이 생각했던 안정된 시골생활은 존재하지 않았고 도시와 동일한 불안과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해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찰스 디킨스는 잔인하게도 넬이 상상하는 유토피아를 산업사회의 부조리와 포악함으로 지구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런던만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포악성은 넬이 가는 곳마다 퍼져있었고 다시 도박에 빠진 할아버지의 모습은 퀼프와 다름이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노인이 자리에 앉아 작은 승리에 기뻐 날뛰고 패배에 의기소침하고, 거칠게 굴고 안절부절 못하고, 엄청나게 열광하고 격하게 불안해하고, 작은 판돈에 무섭게 집착하고 심하게 탐욕을 부려 넬은 차라리 그가 죽는 모습을 보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page 309)』 


반면 중세고딕 교회마을에서는 종교에 대한 헌신적 태도나 희생적 사랑으로 소중한 가치를 찾으며 착한 넬이 죽음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인생은 여행과도 같고 그 끝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은 소멸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멈춰진 사물이 가득한 골동품 상점은 변화와 움직임을 저항하는 물건들로 가득 찬 곳이다. 변화를 싫어했던 넬은 밤새 도박을 하러 나간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두려움에 떨었던 곳이었고 그 곳을 떠나면 할아버지가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넬이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스쿨마스터와 무덤파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찰스 디킨스의 이 작품이 왜 이토록 오랜 기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산업도시 노동자들의 절박하고 비참한 도시의 삶, 자본주의의 포악성, 도박과 탐욕, 가난과 이기주의 등 어린 넬은 긴 여정을 통해 현실세계의 모습을 지각하게 된다. 실상 행복은 어떤 특정한 위치에 유토피아라고 딱 정해져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넬이 바랬던 행복 역시 큰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결국 인간이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종착역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소중한 것들을 돌아봄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조용하게 깨달음을 주고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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