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날치, 파란만장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3년 2월
평점 :

힘겹게 돌아선 여인의 발밑에 상사화가 이지러졌다. 꽃과 잎이 서로 보지 못해 생겨난 이름이라던가, 꼭 무망한 관계가 되어버린 자신과 날치처럼. 백연의 걸음걸음, 짓이겨진 홍화들이 핏물처럼 길을 내었다. 꽃내음이 매웠다.
이 애틋한 연인을 그냥 사랑하게 두면 안 되는 것인가! 파란만장한 이날치의 삶을 우리 고유의 열두 달 놀이와 함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진 장다혜의 장편소설 이날치에 빠져 4일을 살았다. 평상시 병렬 독서하던 다른 책은 모두 덮었다. 오직 이날치에만 몰입하고 싶었다. 그만큼 몰입도가 강했고 아끼고 곱씹어 읽었다. 남녀상열지사의 애틋하고 야릇한 사랑의 장면도 작가는 참으로 귀한 단어들로 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고급 지고 아름다운 서술을 아끼지 않았다. 줄 타는 광대와 천한 곡비의 사랑이 뭐 대수일까!
-
어린 시절 역병으로 조실부모한 계동은 소리를 배우겠다는 신념 하나로 화정패 줄타기에 팔려가듯 따라가 패거리 중 줄꾼 묵호의 가르침과 보살핌으로 이날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최고의 줄타기가 된다. 화정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는 노름에 미친 인간이라 노름판 밑천이 된다면 딸도 저당잡아 팔아버릴 인간이기에 날치도 수시로 재물이 되기도 했다.
참봉 댁 종이었던 백연의 어미는 참봉의 은혜를 입고 백연을 낳았다. 신묘년 대홍수로 역병이 돌며 줄초상 끝에 풍비박산 난 가문을 떠나 초상집에서 대신 곡을 하는 곡비로 살며 백연을 키운다. 그러다 선무당 같은 당골네의 눈에 띄어 저주 같은 죽음을 예언 받고 결국 급사하게 된다. 홀로 남은 백연은 당골네가 거두어 애동무당 대하듯 굿판의 보조 일을 시킨다.
좌포청 종사관이었던 상록은 무과에 급제해 조선 최고의 신검으로 불리었다. 아픈 어미를 위해 불공을 드리러 갔다 영의정의 딸 화영을 만나고 사찰에서 1년여간 밀회를 하며 서로에게 애틋한 정을 품는다. 그 사이를 비집고 화영의 벗이었던 자헌 공주가 들어와 화영과 다섯째 오라비인 율언군의 국혼을 이끌어내고 어명으로 상록을 자신과 결혼하게 만들어 의빈으로 만든다.
-

읽는 내내 이 배우들이 겹쳐졌다. 날치와 백연, 그리고 둘의 사랑을 시샘한 상록... 만약에라도 이날치가 드라마가 된다면 이들이 연기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일 뿐이다.

소설은 글을 잘 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읽었다. 이날치라는 소리꾼 하나를 남사당패라는 배경으로 만들어 두고 조선시대의 열두 달 전통 놀이와 구수한 팔도의 방언,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을 독자들이 쉽고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방대한 자료수집과 역사의 고증 등 태산 같은 일들이 합을 이루어야 이날치 같은 멋진 작품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스토리도 흥미로웠지만 소설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며 가사를 곱씹게 된 판소리 다섯 마당, 다채로운 민요를 흥얼대보며 마음에 와닿는 소리는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했다. 이날치, 파란만장은 조선의 흥과 멋에 맛깔나는 작가의 실력이 버무려지고 애틋한 세 사람의 연모가 곁들여져 읽는 내내 한눈팔 수 없는 최고의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