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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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죽어가는 거죠?"

어린 소녀의 물음에 아서 신부님은 대략난감 해진다. 누구나 정해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삶에서 우리가 왜 살아있는지 알 수 없듯이 우리가 왜 죽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17세의 소녀 레니와 83세의 마고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환자들이 치료받는 메이 병동에 각각 입원해 있다. 둘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통하는 무언가를 느낀다. 할머니와 손녀 같은 나이차에 세대를 극복한 둘의 우정은 책을 읽는 내내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며 더 나이가 들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영원한 안식에 든다. 신이 인간을 처음 만들때 어떤 메뉴얼이 있다면 이러한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안식에 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자신이 생각한 순리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열일곱의 레니는 평범한 가정생활을 거부하는 엄마와 하나뿐인 딸 레니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던 아빠에게서 태어났다. 시한부로 메이 병동에 오게된 레니는 그렇게 화이트보드 한켠에 이름이 적혀 어느날 쓱쓱 문지르기만 하면 사라지는 인물이 되었다. 시한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메이 병동에 오게되면 침착해지고 신중해지며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 메이병동은 환자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병원에서 마련한 환자케어프로그램 중 미술실에서 그림을 통한 치유의 시간이 마련되었다. 래니는 이 곳에서 일전에 병원에서 우연찮게 만난 할머니 마고를 다시 만나게 된다.



처음 병원에서 미술실을 오픈하기위해 미술을 전공한 계약직 직원에게 오픈과정 전체를 맡겼다. 이 내용은 전 세계 어느곳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경우라 읽으면서도 무척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미술실이 완성되고 난 후 얕게라도 계약직 직원이 꿈꾸던 희망이 있었다. 자신이 정직원이 되어 미술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는 일을 꿈꾸며 최선을 다하지만 글래스고 프린세스 로열 병원 내 미술치료실 운영자는 이미 다른 내정자가 정해져 있었다. 이를 처음부터 지켜보는 레니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하다. 계약직원이 미술치료실 오픈을 준비하며 노력했음을 모든 사람이 몰라도 자신은 기억할 것이라는 독백을 읽으며 권력으로 비틀어진 왜곡되지 않은 기억을 누군가 선량한 이는 기억하고 있다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백년을 기록한 백개의 그림을...'레니와 마고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 해 한 해를 손꼽아 우리의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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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또한 레니와 같은 마음이었다. 마고는 레니 옆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서로에게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중임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한다. 합쳐서 100살 마고와 레니는 그 백년의 시간을 자신이 아는 눈부시고 아름다운 언어들로 그려보자는 약속을 한다. 이 책은 레니와 마고가 살아 온 그 100년의 시간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던 마고가 정말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위로와 안식을 주고자 했던 아서신부님이 도리어 레니에게서 받은 치유의 시간들과 상처받고 자란 레니가 과거의 기억과 마고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고 아무리 슬픈 내용이 있어도 잘 울지 않는 편인데 뽀르투까가 나오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이후 유일하게 나를 울린 책이다. 차가워진 날씨를 채워줄 만큼 훈훈함을 더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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