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함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 열린책들



인생은 한갖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 그것은 고함과 분노로 가득찬 , 천지가 떠들어대는 아무 의미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맥베드 5막 5장


욕망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한 맥베드, 그의 마지막 독백은 이 책의 제목 『고함과 분노』가 되었고 지능발달이 늦은 콤슨가의 막내아들 벤지의 고함 속 서른세번째 생일인 1928년 4월 7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 가족이 왜 행복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는지 이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북전쟁 패배 후 미국 남부는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은 지적장애를 가진 막내 벤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실상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긴 하나 과거 기억 속 일들이 중간중간 전개되어 극의 흐름을 더욱 긴장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책은 공통적으로 시간이라는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벤지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은 단지 감각에 의존할 뿐이며 사건의 연속성도 인지하지 못한다. 벤지의 시간은 항상 현재로 고정되어 있음을 읽는다. 세살짜리 아이의 지능답지 않게 그에게는 냄새로 상황을 판단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순결한 캐디에게서 벤지는 나무 냄새를 맡고 캐디가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며 향수를 뿌리자 사라진 나무 냄새를 그리워 하며 울부짖는다. 추위와 질병, 죽음까지도 벤지는 냄새로 인지해 낸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혼돈이 오기도 하는데 누나 케디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다보면 벤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백치라는 규정보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알고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빠져 사는 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잃고 허무주의적인 철학에 빠져들 뿐이며 차남 제이슨만을 아들로 인정하고 있는 참으로 자기중심적이며 불평,불만만 일삼는 우울증 걸린 엄마를 대신해 장녀 캐디는 벤지에게 엄마대신 사랑을 전하는 모성애를 보인다.




두 번째 장의 화자는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콤슨가의 장남 퀜틴이다. 그는 명석하고 예민하여 그림자만 보고도 시간을 분 단위까지 맞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시간에 대한 강박을 보이기도 한다. 퀜틴은 장남이라 그런지 동생들에 대해 상당히 의무감을 보인다. 특히 여동생 케디의 부적절한 몸가짐에는 더욱 예민함을 보여 여동생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왜곡인지 읽는 독자로서 이해되지 않아 다시 읽기도 했었다. 모순된 퀜틴의 행동은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며 근래에 아주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특히 2장에서 퀜틴이 전하는 내면의 독백이 강하게 와 닿았고 현재의 시간을 파괴하며 과거의 영광과 명예에 집착하며 매달리는 모습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퀜틴과는 달리 차남 제이슨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는 오직 한가지, 돈을 벌기 위해 현재를 몰두하고 있다. 제이슨에게 있어 시간이란 곧 돈이다. 극도의 물질주의적 지향으로 그의 어머니에 의한 정서왜곡과 함께 스스로 파멸하는 원인을 제공하였고 콤슨 가문의 몰락을 더욱 촉진 시키는 비극적 인물이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시간을 가장 바르게 인식하는 인물은 흑인 하녀 딜지이다. 모든 사물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딜지는 어떠한 현실의 악조건도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그 바탕의 원동력은 그녀의 신앙심이었다. 딜지는 한시도 능동적인 삶을 살기보다 삶에 조근 더 몰임하고자 애썼으며 그녀의 모습을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미래도 존재하지 않고 현재도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는 캄슨가의 사람들은 몰락해 가는 가문을 다시 살릴 능력조차도 갖지 못한 채 점점 더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기계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시간 감각을 그려내는데 노력하였다. 벤지,퀜틴,제이슨, 그리고 하녀 딜지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개개인의 내면적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가족의 몰락이 왜곡된 시간의식과 별개일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시계에 의한 객관적인 시간보다 내면의 시간을 통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함을 알았고 딜지처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살아가면서 절대 잃어버리면 안되는 삶의 지침임을 깨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