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임레 케르테스 / 민음사
책의 제목만으로도 독자는 다양한 상상에 빠진다. 아기에 대한 부모의 간절한 염원이나 혹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후회가 상상되었다. 작가인 임레 케르테스는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기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후 유대인 박해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고통을 받는다. 이 후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주력하며 글을 써 나갔다. 곧 이 글은 자신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글이었다.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본능에 반하여 작동하는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반(反)본능이 우리의 본능을 대신하고, 더욱이 본능인 것처럼 작동하는것이 이미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라는 본능에 대한 서술에서 탁!하고 막혀 버렸다.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것인가 . 나의 문해력을 탓하며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다시 생각해 보건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싫어도 싫다는 소리를 못하는 자리가 있듯 좋아도 혹시 가볍게 보일까 나를 누를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부담을 가지고 살아낸다.
작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언어의 유희들로 독자들을 잡아 끄는 이유 또한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 된다. 이 모든 글 안에는 작가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엉뚱하게도 그는 신경증이나 과거의 트라우마가 스스로를 엄습해 올때 강한 창작의 욕구를 가진다고 한다. 유대인으로 살아오면서 그와 그의 아내가 겪은 지독한 삶의 고통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자신이 겪은 유대인으로서 삶의 지독한 고통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던 작가는 누군가가 물어오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인생에 아이는 없을 것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살고 싶었던 아내는 결국 그를 떠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듯 나치로 부터 받은 고통에 케르테스의 강한 혼란이 보여져 안타깝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