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소담출판사

낱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보태어 글을 써 낸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이렇게도 글이 되고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구나! 하며 감탄을 쏟아냈다. 작가의 당부대로 순서대로 읽지 않고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해도 뚝딱 글이 되어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경이롭기도 했다. 낱말 속에 숨어 든 작가의 소중한 기억과 삶들을 어떻게 단어를 통해 글로 이끌어 내는지, 각각의 낱말들에서 또 다른 낱말들과의 작은 소실점을 통해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작가가 보여주는 글쓰는 소질이라는 것에 감탄만 있을뿐이다.

가령 터지다 라는 보조동사를 글감으로 받는다면 나는 어떤 주제를 만들어 낼까 생각해 보았다. 풍선이, 꽃망울이, 폭죽이, 봇물이, 바지가, 종이 백이... 등등 터지다는 보조동사로 다양하게 해석이 된다. 작가는 구구절절 세상의 터지는 것들을 나열한다. 운수가, 일복이, 웃음이, 코피가, 분통이...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어휘들을 꺼내두어 한 수 가르침을 준다.

낱말의 숲 속에서 자라는 낱말의 나무, 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는 낱말의 열매를 땄다. 던져보고 굴려보고 핥아보고 깨물어 보았다. 잘 익은 낱말 한 알을 당신에게 주려고 사랑을 품듯 마음에 품었다.

작가가 글을 쓰는 궁극적 목적인가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바뀌어 가는 것이 보였다. 타인을 위해 예쁜 말들을 만들어 갔지만 결국 썪어 문드려져 돌아오기 일수였다. 길고 긴 망각의 시간을 보낸 후 얻어낸 것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삶이다. 글쓰기를 통해 승화된 아름다운 본보기이다.

아침은 밤 같고

밤은 제대로 된 밤

같지 않다.

page144

이 글을 어떤 주제에서 뽑아왔을까? 펼치는 대로 담겨 있는 글을 읽고 추리해 본다. 여행에 지쳐 피곤한 객이 제대로 쉬지 못할 때의 상황이 들여다 보였다고 나는 추측했다. 피곤함?



이 글의 주제는 침묵이었다. 반지하에 살면서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짧디 짧은 빛의 유무에 따라 낮과 밤을 겨우 구분했던 삶, 그 삶 속에 끌어온 가난한 자취생의 기억과 이 후 3층으로 이사해 하루 종일 들어오는 빛을 끌어낸다. 주제는 침묵인데 침묵은 언제 나올지 의아해지기 시작한다. 빛을 소리와 연관 시킨다. 빛이 없는 상태는 무음이다. 음이 죽은 상태(死音)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빛에 빚대어 '너'를 소환해 이것저것 캐묻는다. 너는 곧 나 자신이다. 읽는 독자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노선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낱말들을 끌어모아 책을 쓰게 되었을까?글쓰기는 멀고도 가깝고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친한 듯 하면서도 거리감있는 작업이 아닐까? 그 복잡한 길을 걸어가며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또 지름길을 발견하기도 하며 분명 걸어갔던 길인데 낯설어 보이는 길도 발견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주면서 길 가에서 쉽게 마주치는 단어들로도 글감을 빼낼 수 있음을 호기롭게 보여주기 위한 재능발표회를 보는 느낌이다. 잘 써도 어렵고 힘든길이 글 쓰는 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다면 이렇게도 하나의 방법이 있어! 라는 참고서 같은 친절한 책이라고 하면 될까?무튼 참으로 글 잘 쓰는 작가, 아니 글 쓰는 방식이 남다른 작가라고 이해하며 책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