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 농노해방을 둔 시기였고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개의 이념이 상반되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던 그들은 어느 하나 서로 간에 화합하는 부분이 없었고 큰아버지 파벨의 눈에 보이는 바자로프는 오만하기 그지없으며 냉소적이기도 한 천한 잡급 출신의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바자로프에게 큰아버지 파벨은 이기적인 귀족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뒷방 영감 일뿐이었다.
주객전도이다. 이 집의 주인인 니콜라이와 아들 아르카지는 온건한 진보주의자들인데 자신의 형과 아들의 친구인 바자로프의 대립이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니콜라이는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자신의 살림을 돕던 집사의 딸 페네치카와 아들까지 둔 사이였다. 투르게네프 소설은 특히 다른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다르게 연인들 간의 사랑과 심리적인 묘사들에 탁월했던 터라 부자간의 갈등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의 사랑과 심리적인 부분까지 곁들여두어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기도 한다. 집사의 딸 페네치카에 대한 귀족 니콜라이의 동정 어린 사랑이나 매혹적인 과부 오진초바에 대한 바자로프의 열정적인 사랑, 오진초바의 여동생 카챠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양념처럼 더해져 진보와 보수의 갈등 속에 지루할 틈 없어진다.
특히 자타가 공인하던 니힐리스트인 바자로프에게 다가온 지적인 과부 오진초바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고정적인 신념까지 흔들며 열병에 시달리게 한다. 오진초바는 바자로프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사랑에 흔들릴 만큼 어리석은 여성은 아니었고 바자로프와는 달리 바자로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상당히 능숙하게 조절함을 보여주었다.

한낮의 폭염이 지나가면 저녁과 밤이 찾아오며,
그 후에는 괴로움과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
조용한 은신처로 돌아와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인 투르게네프는 어떤 신념을 가졌을까 궁금하기도 했으며 바자로프에 대한 작가로서의 사랑이 느껴지기도 했다. 19세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고민했던 것, 신분, 삶의 애환을 들여다볼 수 있어 금세 읽어버린 책이다. 투르게네프의 다른 소설들도 앞으로 읽어보아야 할 숙제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