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박물관 -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스벤 슈틸리히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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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박물관

스벤 슈틸리히 / 청미 출판사



흔적, 탐색, 마치 셜록 홈스와 왓슨이 범행 장소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할 때나 쓰이던 말들이 책의 서두부터 등장한다. 작가의 말처럼 인간이기에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휴가를 떠났던 장소나 머릿속, 낡은 사진첩이나 컴퓨터 하드웨어나 sns 귀퉁이 어딘가에 우리의 흔적을 남겨둔 채로 살아간다. 그 손때 묻은 흔적들은 유형의 존재로도 남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무형의 존재로 의지해 흐릿하게 남아있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열망하고 그 아름다운 순간에 시간이 멈춰지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이름을 남기지만 이름만으로 아쉬워 자신을 기억하게 할 무언가를 더 남겨 남아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 책은 아주 살뜰하게도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며 인간이 무엇을 남기는지 생물적, 정신적 문화적 흔적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한다. 구석구석 샅샅이 찾아다니다 보면 작은 메시지 하나는 분명 남겨줄 것인데 바로 자신의 일상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인생의 작은 순간이지만 현재의 삶에 조금만 더 충실하자는 것이다.


출근길 항상 보이던 스카이 뷰가 사라진 것을 새삼 바라보게 된다. 매일 오가며 바라보던 하늘인데 빽빽한 아파트로 둘러싸여 날씬한 여인의 옆태 같아 보이던 매혹적인 산의 능선이 어느새 가려져버렸다. 이러한 일들이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일어난 것도 아닌데 쉴 새 없이 바쁜 업무에 쫓겨 살며 일상에서 바라보던 것들이 나의 좁은 시야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 일상에서는 아이들이 그렇다.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처럼 그렇게 엄마를 불러대던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길로 발걸음을 내디뎠고 고사리 같던 손을 좍 펴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다. 부모는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존재를 그리워한다는 글을 이 책 어느 모퉁이에서 읽었는데 줄을 긋지 않아 찾을 수가 없다. 이래서 책을 자꾸 소유하려고 하나보다.


책을 읽으면서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했다. 우리가 떠날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지, 우리가 누군가를 떠날 땐 무엇이 남을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이 남을지 말이다. 내가 늘 고민했던 것은 예고되지 않은 내 삶의 끝에 남겨둔 기록의 흔적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청미 출판사 대표님은 댓글로 이 책을 추천해 주셨고 책을 펼치면서도 온통 나의 생각은 거기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호박 속에 갇힌 파리처럼 어느 순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화석처럼 굳어갈 나의 이야기를 누가 펼쳐 볼 것인가. 책은 깔끔하게 대답해 준다.


과거는 온라인상에 계속 살아 있으며, 이 과거를 지워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과거는 과거대로 평안히 흐르게 하자.


"나 여기 왔었다.
자신을 영원히 남기고픈 열망 "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안다.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는 것 역시 어렴풋이 짐작은 한다. 우리가 사라져 잠깐 삐거덕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해는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는 잊힌다. 우리는 매우 덧없는 존재다.

page81

나는 나 자신에게 내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언제 무슨 일을 겪었고, 그때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돌이켜보면서 인생을 살며 품는 많은 의문의 답을 찾아보고 싶다.

page271

생각해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물건들은 추억을 송환하며 미소 짓게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을 펼치며 그때 아버지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메모라도 한 장 발견할라치면 마치 유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감탄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떠나버리고 남아있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물건이나 추억 처리에 대해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나 자신이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이후에 남은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된다. 나의 부모가 숨 쉬고 내뱉었던 공기를 내가 마셨듯 나의 자녀들도 내가 마시고 내뱉었던 공기를 마시며 살아갈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되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가뿐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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