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묘한 집중력이 발생하는 문장이다. 이후에 전개될 장르에 따라 집중의 정도를 달리하겠지만 어린 시절 내려 감기는 눈을 굳은 의지로 잡아당기며 오직 그 이야기를 듣고자 버텨냈던 산증인이기에 이들이 꺼내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고 기대되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영문학의 정서로 운문의 형태를 산문으로 번역한 책이다. 단언컨대 아마 운문이었으면 이해도도 떨어지고 집중을 못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캔터베리 성당의 성 토마스 버켓의 신전으로 떠나기 위해 여관에 모인 서른 명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여관 주인이 순례를 떠나면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둔 사람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초서가 눈을 감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은 책이라고 한다.
상권에는 12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더불어 기사, 방앗간 주인, 장원 감독관, 요리사, 법정 변호사, 법정 소환인, 면죄부 판매인, 주부, 수사, 수녀, 옥스퍼드 대학생, 상인, 수습 기사, 시골 유지 등 그 시대의 다양한 직업군이 보인다. 궁금한 것은 이야기를 이끄는 『나』라는 1인칭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관찰자 시점으로만 존재하는지는 하권을 읽어야만 알 듯하다.
이야기는 주로 중세 영국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신앙 등 그들이 가지는 가치관이 담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시대적 영향에 따라 어느 정도 여성을 천대 시 하거나 원색적인 표현과 무분별한 성적 관념도 묘사되어 있으며 지금과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사,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어떤 부분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상기시키기도 했으며 세에라 자드가 천 일 동안 자신의 목숨과 바꾼 옛날이야기를 잔혹한 샤리아르왕에게 들려주는 아라비안나이트도 생각나게 했다.
상권의 12편의 이야기 중 으뜸은 기사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