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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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그러니까, 달리는 거야! 신뢰받고 있으니까, 달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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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중요성이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난폭한 왕을 교화 시킨 이야기다. 웬 뜬금없는 옛날이야기? 그렇다. 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속 한 이야기이다. 급 우울하고 저기 지하 몇만 미터 아래까지 가라앉을 심연의 글을 쓰던 다자이 오사무가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실러의 시와 옛 전설을 잘 조합하여 단편으로 만들었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추앙하는 나로서는 새롭고 혁신적인 만남이다.


양치기 메로스는 열여섯 여동생의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들과 산을 넘고 도시로 나간다. 그곳에서 간교하고 포악한 왕의 이야기를 듣고 격노 하기 시작한다. 청정 자연에서 살아가는 메로스는 신념도 청정하여 사악함에 대해서는 유달리 민감하다. 포악한 왕의 횡포는 이러한 메로스를 충분히 화나게 만들었고 왕이 거처하는 성으로 찾아가 로켓단도 아니면서 정의의 이름으로 왕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참 뭐라 표현하기 막막하지만 이 청년 무모하다. 둘도 없는 친구 석공 세르눈티우스가 도시에 살고 있는데 서로는 만난지 2년이나 지났다. 신뢰의 힘은 여기서도 발동해 친구를 인질로 왕에게 바치고 자신은 3일 동안 동생의 결혼식을 치르고 오겠다고 한다. 친구인 석공 세르눈티우스는 또 무슨 죄인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당연히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성으로 불렀고 이 좋은 사람 세르눈티우스는 친구 메로스에게 어서 다녀오라고 한다. '달려라 메로스'도 좋지만 '착하다 세르눈티우스'의 이야기도 좋을 법하다.


3일이다. 3일 안에 고향으로 돌아가 동생의 결혼식도 끝내야 하고 서둘러 도시로 돌아와 인질로 대신 잡힌 세르눈티우스를 살려야 한다. 그러니 메로스가 걸을 수 있겠는가!


육체가 피로하면 정신도 함께 망가진다.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용자에게 걸맞지 않은 비뚤어진 근성이, 마음 한구석에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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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스의 마음이다. 온 힘을 쏟아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들이 긴박하게 보이고 지칠 대로 지친 심신에 간사한 마음이 깃들어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해 내적 갈등에 대한 다자이 오사무의 표현들이 맛깔스럽게 책 속에 드러나 있다. 무모한 메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결코 공허한 망상이 아님을 왕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다자이 문학의 중기인 시기의 대표작 옛이야기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부끄러운 생을 살아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에 묻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를 다자이 오사무만의 감성과 빼어난 필력에 상상력을 보태어 만들어진 부담 없는 옛이야기책이다. 혹부리 영감과 우라시마씨, 카치카치산, 혀 잘린 참새는 우리 어릴 적 듣고 자란 이야기라 더욱 정감이 갔다.


황금 풍경은 어릴 적 자신이 구박한 하녀가 결혼해 가정을 일군 후 재회하게 되는데 과거에 못된 행실을 많이 한 주인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껴 불편함을 보인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자전적 사실들이나 경험들이 스며든 작품들이 많아 왠지 그 못된 행실의 주인이 글 쓴 자신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이 소설 반전있다. 나 스스로도 읽고 반성을 했고 진심 살아가는데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엄지 척이다.


헤어지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만 했습니다.

제게도 틀린 구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치 中

그렇지!! 이게 바로 다자이 오사무만의 문체이지. 나는 읽으면서 감탄하기 시작한다. 다자이 오사무만의 여성독백체, 내가 다자이 오사무 병에 걸린 가장 큰 포인트이다.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인간실격 중)여치는 작가 스스로가 훗날 인기작가로 승승장구하여 소위 말하는 속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아내의 글을 통해 투영되어진다.

죽을때 까지 가난하게 자기 좋을 대로 그림만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에게 조소당하고, 그럼에도 태연스레 아무한테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이따금 좋아하는 술을 마시고 평생, 속세에 더럽혀지지 않고 살아갈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보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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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단편 축견담은 떠돌이 개를 받아들이며 모순된 모습을 보이는 소설인데 너무 재미있어 따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다채로눈 스펙트럼을 한층 폭넓고 깊게, 무엇보다 유쾌하게 즐기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이 작품을 옮겼다는 역자의 궁극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느낌이다. 비범한 이야기꾼 다자이 오사무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어떤 감탄할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지 그를 추앙하는 독자로써 안타까운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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