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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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이순자 / 휴머니스트

노년의 삶, 가만히 생각해 보면 '쉼'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삶의 마무리 선에서 조용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황혼의 세대'라고 인식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모든 생각들을 가볍게 제쳐버리고 새롭게 살아낸 한 작가가 있다. 늦은 나이에 글 쓰고 싶은 욕구를 못 견뎌 문예 창작학과에 입학했고, 종갓집 며느리로 온갖 고충을 참아내고 살았으나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황혼이혼을 과감히 감행하기도 했다. 장열 하게 글을 써서 공모전에 당선하고 창작의 결실을 이제 막 맺어내기 시작할 때 작가는 홀연 소천하고 만다. 너무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니 남은 생을 모조리 다 불태웠나 보다.

책을 읽으며 독자로서 느끼는 것은 가능성과 도전이 나이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 책을 쓴 작가가 증명하고 있음이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귀촌 한 시골에서 새댁으로 불린다. 뒷집에 사시는 구순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에게는 환갑의 작가가 마냥 귀여운 새댁으로 보이나 보다. 잠시 서울 다녀왔더니 어르신이 눈을 흘기시며 보고 싶었다 하신다.

며칠이나 살고 가려나 하시더니

할머니는 벌써 마음에 내가 앉을

의자 하나 놓으셨나 보다.

뒷 집 할머니는 작가를 깨꽃에 비유한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깨송이 영글어 고순내 풍긴다고 하니 뒷집 할머니도 시인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딸의 등살에 사이버 대학의 문창과에 입학한다. 그 때가 쉰 다섯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일상에서 하기 싫은 일도 부탁하는 상대가 자신이 거절하면 실망할까봐 참고 해내는 스스로의 희생을 미덕으로 알았다고 한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장애가 아닌 것처럼 살았고 아내와 통화가 불편해 바람을 피웠다는 남편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모든 것을 허물고 홀로 섰다.

환갑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하고 있는 일도 끝내야 할 준비를 하는데 작가는 공부를 했고, 글을 썼으며 취직을 하려고 노력했다. 돈을 벌기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몫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을 드러내고 있어 놀랍기만 했다. 작가는 삶의 답답한 경계를 허물 수 없어 글을 쓴다고 한다. 글 안에 작가의 슬픔, 기쁨, 한탄과 목마름, 안타까움 모두 스며들어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왔다. 작가의 대표작이며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을 수상한 『실버 취준생 분투기 』는 읽으면서 고령의 늦은 나이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취업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만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마음 아파하나 결국은 자신만의 고집대로 일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이다.

가능성과 도전은 젊음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도전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는 작가의 일상 속에서 열정을 읽는다.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없이 쉬지 않고 정진하는 삶을 살아낸 이야기를 읽으며 스스로 부끄러워 지는 부분도 있었다.안타까운 것은 더 이상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세상에 남긴 희망,사랑,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태해질때마다 곱씹어 읽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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