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신고은 지음 / 샘터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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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신고은 지음 ㅣ 샘터 발행

『가스등』이라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보고 '가스라이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영화는 처음 접근부터 세뇌되기까지의 가스라이팅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해 준다. 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히 조작해 누군가를 조종하는 행위로 작가는 이를 정의하고 있으며 나에게는 가스라이팅은 연인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으나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사례를 접해보면서 다양한 관계 속, 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세상 안에서 개인이 받아야 하는 고통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한 가스라이팅의 사례가 속속들이 소개된다. 이런 것도 가스라이팅인가? 싶었으나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 또한 가스라이팅으로 정의 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우리 삶의 밀접한 이야기들을 통해 심리 현상을 자세히 분석해 주니 이해도가 빨라진 느낌이다.

가스라이팅을 가해하는 사람과 늘 당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도대체 왜 저러고 살아?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름 피해자나 가해자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이를 심리학을 전공하고 강의까지 하고 있는 작가가 지극히 논리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덧붙인다. 각각의 예속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의 심리를 친절히 설명한다.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하고, 그 상대가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패의 원인과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행위를 가스라이팅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나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생각해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경험한 느낌이다.

▶가해

자녀들이다. 주일에 성당에 나가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너를 벌주실 수도 있다며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법이 틀렸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아침은 무조건 성당 미사엘 가야 했다. 추위, 더위, 장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 엄마에게 신앙이란 철벽같은 방패는 자녀들에게도 강요되어야 할 부분이었고 우리는 마땅히 이를 지켜나갔다. 그렇게 배웠다. 그러니 배우고 학습한 대로 내 자녀에게도 신앙을 강요했다. 더불어 소소한 문제 발생 시에도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기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됐지'라며 아이 스스로 자책하게 만든 것이다.

▶피해

착하니까 뭐든 시키는 대로 다한다. 어린 시절 나는 줄곧 자잘한 심부름을 담당했다. 교사였던 엄마의 부재로 살림은 항상 이모나 집안일을 도와주던 분들의 몫이었다. 착하니까...라는 칭찬은 곧잘 나의 감정을 억누르는 계기가 되었다. 컴컴해지는 골목을 내달려 시장까지 가서 두부를 사 와야 했고 새벽에 목이 터져라 짖어대는 키우던 개에게 물 한 사발을 떠다 받쳐야 했다. 멀리 사는 육아에 시달리는 이모집에 가서 방학 동안은 꼬박 육아를 도와야 했고 집에 가고 싶어도 착하니까... 이모가 힘드니까 나는 다른 형제들이 엄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도 함께 갈수 없었다.

나는 착해서 그것을 감수하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표현하지 못해서 그랬던 느낌이다. 내가 있기 싫다고 하면 이모가 실망할 것이고 엄마는 어떻게든 나를 설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왜 당당하게 나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을까?

책을 통해서 그때의 가해자와 피해자였던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가해적인 부분에서의 기억하는 것은 끄집어 내서 늦게나마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을 표현할 필요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나도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서 몰랐고 그렇게 해서 기분이 안 좋았다면 엄마가 정말 미안해" 라는 표현 말이다.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의식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 "괜찮아. 너는 앞으로 자라서 행복한 어른이 될 거야."라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책을 읽고 나니 이러한 잊고 지낸 상황들이 정리됨에 참으로 고마운 느낌이다.



점점 커지는 상처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끊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돌아서는 용기를 내야 하지요. 이 길이 아니라면 여태까지 나의 수고와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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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세상에는 가스라이팅의 상황이 너무 보편화되어 있다. 이는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일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이러한데 상대가 그에 따르지 않으면 원인을 캐묻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상대에게 설명한다. 물론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에도 이를 거부한다면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이 과해질 수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회 공동체 안에서 지켜내야 할 규칙이 있듯이 이에 어긋나게 행동했을 때 상대방을 따르게 하는 것도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실천해야 할 대상이 기분 나쁘게 느꼈다면 올바른 정의도 가스라이팅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이때 강요라는 것이 배제된다면, 스스로 선택하는데 타인의 감정과 생각이 섞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상황이라면 가스라이팅이 소멸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비합리적인 신념보다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자아로써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다면 어떠한 문제에 직면해도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가 얼마만큼 상대방에게 조심해서 표현해야 할 말들이 많고 충분히 연습하고 뱉어내야 함을 알았으며 세상을 착하게만 살아가기보다 선을 지키며 살아감이 우선시 되어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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