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나태주 / 앤드(&)
첫눈같이 아름다웠던 기억의 문을 열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낸다. 이 책은 작가 나태주의 회고록 인생이야기 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기억의 창고라는 것이 있듯이 살아가면서 생겨난 온갖 기억들이 차곡차곡 쟁여져 있다. 작가 자신의 기억이 혹여 왜곡되었을까 좀 더 냉철해 지지 못함이 부담이 되어 몇 번이나 쓰기를 미루었지만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한 번쯤은 꺼내어 정리해 야 할 일이었나 보다. 이제 자신은 기억으로부터 해방되고 책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고 훌훌 털어내려고 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춥고 배고프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다 보니 외할머니와 함께 남의 집 접방살이를 하면서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한 칸의 방과 외할아버지의 유품인 시계를 애지중지하며 살았던 기억을 끄집어 낸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남을 도울 줄 알았다. 할머니는 내 배가 고프면 남도 배고픔을 알게 하셨고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알려주셨다.
광복이 이루어지고 어수선한 세상, 그 와중에 전쟁까지 일어난다. 외할머니는 여섯 살 어린 나를 모든 것에서 지켜 내셨다. 청상과부, 함께 살 자식도 시댁 식구들도 없는 처지, 오직 당신 곁에는 외손자 하나 달랑 있었을 뿐이다.
작가의 애달픈 상황이 그려진다. 네 살부터 열두 살까지는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기전 인간적 가소성이 가장 강한 시기라고 한다. 그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와 보내면서 귀하디 귀하게 자라며 세상을 알아갔다.
책을 읽으며 우리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전매청에 다니던 할아버지 덕에 그나마 우리 외갓집은 넉넉했었다. 부부교사인 엄마,아빠는 수학여행이나 둘만의 여행으로 가끔 우리 4남매를 외갓집에 맡기곤 하셨다. 외할머니는 한글도 읽고 쓸줄 모르셨지만 셈은 기가 막히게도 잘하셨고 옛날이야기는 왠만한 마당놀이 주인공 못잖았다. 성품이 너그럽고 올곧으셔서 이웃들이 자주 할머니댁에 놀러오셨고 손주들이 와 있다고 하면 할머니의 벗들이 오셔서 함께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도 했다. 나의 기억에도 외할머니는 참 따뜻하다. 퇴근 하신 할아버지는 술냄새 가득히 머금고 우리를 한명씩 부둥켜 안고 침을 그득히 묻혀가며 뽀뽀를 하곤 하셔서 곤란하게 하셨는데 ^^;; 책을 읽다보니 나의 아름다운 추억도 슬며시 소환된다. 작가의 기억은 외할머니와의 추억으로 가득하다. 그 추억속에서 외할머니를 만나 그때 느끼지 못했던 애틋함을 가지고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