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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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민음사


책은 순식간에 넘어간다. 그리고 생각나는 단어 하나...기시감...


내 주변의 이야기 같고 분명 이전에 한번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완벽하게 정리되고 다듬어진 글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다가 또 다른 것에 울컥해 지기도 한다.


조남주 작가의 신작 『우리가 쓴 것』은 우리의 삶 이야기이다. 우리 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이고 나와 내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내 자매와 친구와 이웃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총 8편의 단편으로 꾸려진 이번 책은 10대부터 80대 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새롭게 보고자 그녀들의 이야기를 깨뜨리는 '시간의 집합체'라고 한다.


『매화나무 아래』서는 여든의 '나'가 큰 언니의 임종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이야기이다. 이 단편을 읽으며 세자매의 모습에서 가까운 미래의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고달픈 삶 속에서도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큰언니와 암으로 투병하던 작은 언니의 평온한 죽음,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내고 죽을 것 같은 아픔도 참아내며 살아온 자신의 삶까지 요양병원 마당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다 아무데나 발을 붙인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에 그녀들의 삶이 오롯이 겹쳐진다.


길 건너 공사장 배경의

매화나무가 참 생뚱맞다.

쫓겨나고 떠밀리다

아무 데나 발을 붙인

늙은 나그네 같다.

page16


노년의 시간은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도 오늘같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똑같은 시간이다. 그 아픔의 시간들 속에서 서로 다른 자신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생각-


가는 누구의 삶도 허투루 보고 듣지 않나보다.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버 영상을 보다 『오로라의 밤』과 『매화나무 아래서』가 모티브가 되었고 여성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오로라를 만나 손주를 보지 않겠다고 소원을 외치는 엄마의 모습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회적 지위나 모든 것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불평등을 감내하고 참고 견디어 내며 차별을 감수했던 그녀들의 세대.

『가출』에서는 사소한 티비시청 채널권 결정까지도 아버지의 뜻에 따르며 중얼거릴줄만 알던 엄마가 아버지의 가출에 격분해 왈가왈부 떠들던 우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말 할 수 있구나.

page96


『현남오빠에게』는 또다른 김지영을 만나 본 기분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조금만 돌려 생각해보면 스스로보다는 상대에게 맞추어 살아감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사랑이라는 허울로 존중하지 않고 갑을관계 처럼 변해버린 연인사이. 가스라이팅으로 한 여자의 삶을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만들어 둔 것이 주변에서 너무도 좋은남편감으로 보여지는 것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다.






돌아보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정리하게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도 권고사직 당하는 『미스김은 알고 있다.』을 읽으며 위태위태 이어나가고 있는 내 직장생활이 보이고 가출한 아버지와 무심히 지내던 가족들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우리들의 고민이 보인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잘 만들어진 각각의 조각보를 이어서 여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완성된 시간이 내재된 네버앤딩스토리 같았다. 작가가 선택한 여러 시간대 속에 또 다른 김지영 들의 이야기가 화수분 처럼 뿜어져 나오니 작가로서 앞으로 어떤 주제의 글을 써야할지 고민의 시간은 없겠다는 수준 낮은 독자의 얕은 생각도 들었다.ㅋ


우리가 쓴 것은 잘 차려진 밥상같다. 맛이 없는 반찬이 없고 각각이 가지는 개성이 뚜렷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맛이었고 멀지 않은 시간에 다시 만날 맛이며 지나온 시간 속에 잠시 잃어버린 맛이기도 했다. 맛있게 잘 먹은 한끼밥상이었다. -짧은 생각-


출판사 지원 서평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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