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길은 떠나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는 죽음을 건 내기다. 종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마취제요, 환각제다.

성과 죽음의 관능성을 가장 잘 입증한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로, 그는 인간의 본능을 생명 본능과 죽음 본능으로 대별하여 각각 사랑의 신 에로스Eros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의 이름을 붙였다.
죽음의 본능은 간단히 말해 유기물이 자신의 내적 긴장을 소멸시키고 자신의 원상태(무기물상태)인 죽음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이다.
프로이트의 ‘쾌락의 원칙‘에 따르면, 괘락은 긴장과 소멸의 정점이다.
 죽음이 아니고서야 다른 무엇일까?

어떤 번역도 반역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엉성한 번역이 괴테, 바이런, 니체, 지드 같은 문호들의 영혼에 천둥과 번개가 내려친 것이다.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 건물 정문 입구에 하페즈의 시가 이란어로 적혀 있다. <아담의 후예>라는 제목의 시다. 몽골 군사가 천지를 휩쓸고 지나갈 때, 세계 평화와 인류 모두의 안녕을 희구하며 쓴 시다.


"인류는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온 영혼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지."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부름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얘기코자 하노라

-조선 숙종 대의 문신 김성최의 시조

김형경은 <남자를 위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이 단둘이 있을 때, 혹은 남자들끼리만 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파괴적이 되는지, 화제는 저열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작은 일로도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곧잘 파괴적인 분위기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곳에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남자들은 부드러워지고 신사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한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게임의 룰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많은 교수가 정치나 관직에 관심을 둔다. ‘학자가 정치에 나서면 성공은 없고 종말만 있을 뿐‘이라는 경구가 있다. 정치나 행정은 사람과 제도를 움직이는 일이다. 지식과 이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가 강단을 떠나 성공하는 예가 드물다. ‘공을 이루면 스스로 물러나는것이 하늘의 도리‘라는 말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응시는 본질적으로 사악한 눈‘, ‘탐욕으로 가득 찬 눈‘ 이라고 강조한다. 현실적으로 ‘선한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응시가 사악한 이유는 그것이 욕망하는 대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탐욕을 낳고, 탐욕은 시기심을 낳으며, 시기심은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공격하는 폭력성을 낳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학생은 이중적 의미에서 노동자다. 첫째, 많은 대학생들이 재학 중에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자본주의 아래서 교육이라는 상품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대학생은 불가결의 요소로 존재한다. 대학생의 지속적 활동과 창의와 인내가 없으면 대학은 존재할수 없다.
학생도 사회적 노동자다. 그런데도 모두 묵묵히 공짜 노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착취다.

2014년에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This Changes Everything》는 책을 발간한 미국의 반세계화 운동가 출신 작가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은 ‘기후 변화‘ 문제를 자본주의의 핵심 의제로 상정했다. 그동안 부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왔던 클라인은 2007년의 저술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에 등장하는 ‘재난 자본주의‘ 개념의 연장선에서 기후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재난은 당사자에게는 고통이지만 시장에는 기회가 된다는 역설이다. 문제는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인식을 퍼트리고 있는 정치 집단과 그 집단을 후원하는 자본가들이 녹색경제로의 이행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클라인의 확신에 찬 진단은 이것이다.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자본주의는 99%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그들 대부분은 남자들이 될 것이다.

《실낙원Para-dise Lost》의 작가 존 밀턴 John Milton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길은 없다. 고통스러운 이 길 외에는 우리는 어떻게 죽음에이르며 다시 흙으로 돌아갈까? 그대는 인생을 사모하지도, 증오하지도 말라. 다만 최대한 잘 살아보라. 길든 짧든 하늘이 살려둘 때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학의 달인‘이라 불린 20세기 전설적인 영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다.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 나이 든 사람들이 쉽게 전쟁을 결정해서 젊은이를 죽게 만든다. 전쟁에는 40대 이상인 사람만 나가라."

 "사람이 절반은 보수, 절반은 진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절반은 가톨릭, 절반은 무슬림인 사람은 없다. 정치적 문제는 사안에 따라 타협이 가능하지만 종교나 인종 같은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한동안 세상을 흔들었던 새뮤얼 헌팅턴Sanuel Huntington의 《문명의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신이 언제나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에 저항할 수 있는 최종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인도인과 페르시아인들도 신들을 굶어 죽게 할 권한을 유보해두었다. 스칸디나비아인의 신은 인간처럼 늙어간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신은 전지전능하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 신의 한계 영역을 두었으나 기독교에서는 그 영역은 인간의 한계 내지 우매함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고 말았다.

종교도 인간의 발명품이다. 신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인간이다. 종교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종에 특유한 것이다. 종교에 치명타를 가한것은 과학이다. 과학이 가져다준 혜택의 하나는 현상들에 대한 폭넓은 합의를 이루어냄으로써 우리가 찾아낼 진실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점이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Edward Wilson 은 인간에게는 순응과 신성화를 지향하는 유전적 소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진화생물학의 입장에서는 종교도 자연적인 현상의 하나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진화를 거듭해왔고,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삶 역시 어떤 신성한 영역이나 정신 속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진화해온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진화의 세부적 과정을 들여다보며 신에게 묻지 않고도 공동체를 영위할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즉 과학은 인간조건의 새로운 양상을 발견하거나 수정해왔고 인간세계에 유익한 방향으로 조정해왔다.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게 된 이유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종교인이 될 수 있다. 몇 해 전에 사망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종교적 무신론‘을 주장했다.
종교란 반드시 신에 대한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본질적 의미와 자연의 내재적 아름다움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핵심적 요소다.

인터넷은 이제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동시에 여론의 극단화 현상을 이끄는 ‘네트워크 악마‘로서의 이빨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더 많아져야 한다. 영국왕립학회의 다음과 같은 좌우명이 더없이 적확한 곳이 인터넷마당이다.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 nullius in verbal",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도 없다."
한비자韓非子의 명언이다. 삶이 황망할수록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청년 세대의 일상에 스마트폰과 노트북 못지않게 산책과 사색이 중요하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 또한 힘들다 하네.
명나라 말기의 시인 정호程顯의 명구다. 힘들지 않은 세대는 없 다. 제각기 힘든 사연이 다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친구, 더없이 정겨운 이웃 아저씨인 남성도 일단 가부장제의 일원이 되고 나면 즉시 지배자로 탈바꿈한다. 그러고는 피지배자인 여성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영구적 기독교 정당의 설립을 추진하는 핵심 세력은 막강한 경제적, 사회적 자원을 가진 대형 교회의 목사, 장로, 그리고 신자들이다.
이들은 ‘국가적 위기‘를 내세워 내부 결속을 강화한다. 이들이 척결대상으로 지목하는 ‘종북 좌파‘와 ‘동성애자‘의 실체는 사상과 윤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 즉 자유민주사회의 적이 아니라 신봉자들이다.

"일본인은 외국인과 대등하게 친구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외국인은 자기들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존재이지 수평은 없다. 따라서 굽실거리거나 깔아뭉개지 대등한 관계는 드물다. 인간을 전체 인류의 입장에서 이해할 줄 모르는 태도나 형제자매로 이해할 능력의 결여때문에 그들이 진정한 세계인으로 발돋움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된다 하더라도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한 국민으로서는 별로 나무랄데가 없는 단위를 이루고 있다. 법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책임감과 직업의식에 투철하고, 공사의 구분이 분명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하고, 청결하고, 서로 타협해서 대동단결하는 데 능하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ered Dia-monds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를 이렇게 관찰했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지만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형제와도 같다.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에 적혀 있는 경구다.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인종차별 체제를 고집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새로운 출발을 하면서 내건 슬로건은 ‘진실과 화해‘다. 이 슬로건은 과거 청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과거는 그대로 묻어버리는것이 아니다. 용서하려면 먼저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소설가 이병주의 수사다. 역사는 기억과 기록을 두고 벌이는 후세 사람들의 싸움이다. 승자의 행장은 역사로 기록되지만, 패자의 비애와 한은 애틋한 신화와 전설로 명맥이 이어질 뿐이다. 역사의 승자는 가해자이기 십상이다. 피해자의 한을 위무하는 의식 없이 역사가 발전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